오월의 장미는 사라지고
유월은,
어린 시절
골목에서 주운 유리조각을 씻어 눈에 대고 하늘을 보면
맑고 부신 빛을 돌려주던
오래 걸어도 마른 볕만 기분좋게 살갗에 붙어
어느 날 어느 시간 어느 산책도 고슬고슬하던
가볍고 묽은 노을이 지붕 위로 번지면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육포 안주 나눠 먹으며 맥주 한 캔 마셔도 좋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이런 습기는 아니에요
치파오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영화가 떠오르는
이런 습기가 아니에요
(난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제목을 살짝 비틀어
어느 블로그에서 쓰는 닉네임을 만들었죠)
장이지 시인의 어느 시가 떠오르는
이런 습기가 아니에요
(장이지 시인이 쓴 시 <권야>에는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구멍>에 부친다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난 비의 계절마다 이 시를 떠올리죠)
웅성거리는 마음도 없이
손바닥 발바닥까지 모두 끈적한 이런 날씨엔
귀신도 나돌아다니지 않을 거에요
보송하고 가벼운 걸음 사이로
빛나는 무언가가 떠오르려면
먼저 비가 내려야 하나요
비가 내리면 정말
저 장미 꽃잎이 모두 떨어질지 몰라요
봄은 꽃을 끌어안고
사라지겠죠
그 전에 꽃잎 한 장
오목하고 연한 마음에
속삭일께요
비를 주세요
비 그친 후 맑은 공기를 주세요
오늘의 산책자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세요
비웅덩이 구름을 지나갈 신발에게
바람에 잠시 기댈 머리카락에게
나의 유월, 찬란한 축복을
보냅니다
오늘의 안녕을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