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loe Zhao <NomadLand>

by 별이언니

보는 고아였고 우린 애도 없었죠.
나마저 없으면
그가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이 사라질 거 같아서
거길 떠날 수가 없었어요.
우리 아버진 그러셨죠.
'기억하는 한 살아있는 거다'
난 기억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낸 것 같아요.

펀,

이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영원한 이별은 없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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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젊은 남편의 옷을 들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냄새를 맡는 펀은 지붕 아래에서 잘 수가 없다. 편안한 침대에서 잘 수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 옆에서 온기를 나눌 수 없다. 그건 그를 잊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녀가 반지를 뺄 수 없는 이유일까. 반지는 원이고 영원히 이어지는 사랑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걸까.

그와 그녀, 단 둘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그가 먼저 떠났기에 그녀는 그의 기억을 붙잡는다. 그것이 그녀의 세상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설이다. 타인의 눈에는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길 위의 삶이 그녀에게는 그녀 스스로 갇힌 세계라는 것이. 마치 그녀가 마지막까지 버티던 그 폐광처럼.

그것은 사랑일까. 어쩌면. 하지만 그것은 동정이나 연민에 가까울지도 모르고.

그것은 연민일까. 어쩌면. 하지만 그것은 무너져가는 자신을 붙잡기 위한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녀가 길위의 삶 자체를 사랑한다면 - 진정한 자유를 위해 말기암에도 알래스카로 떠나는 스왱키처럼 - 밴이 고장났을 때 여행을 지속할 방법을 합리적으로 찾아야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장난 밴을 거금을 주고 수리하는 것을 택한다. 그 밴에 그녀는 묶여 있는 것이다. 빼지 못하는 결혼반지, 그녀가 잊으면 아무도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편처럼.

이 영화는 사회적 의미로 접근하면 우편번호가 말소된, 세상에서부터 지워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그렸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찾아가는 여행으로 보았다. 데이브는 젊어서 소원했던 아들에게 다시 돌아가 지붕 아래의 삶을 선택했다. 스왱키는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다시 찾아 알래스카로 떠나 그곳에서 그녀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린다 메이는 손자들에게 물려줄 친환경 집을 짓겠다며 길을 떠난다. 부모와 여자친구로부터 떠나온 청년은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려 하지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망설인다. 길 위에서 덜덜 떨며 담배를 피우는 자신과 농장의 울타리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친구 사이엔 사랑이라는 감정을 넘어서는 '서로에 대한 무지'가 있기 때문이다. 펀은 청년에게 샌드위치를 건네주며 시를 쓰라고 권한다.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나 펀은 조금씩 변해간다. 영화에서 펀은 비슷한 표정에 비슷한 말투로 일관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을 쏟는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의 내면은 조금씩 변한다. 필사적으로 기억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녀에게 오늘이 자살한 아들의 생일이라고 대답하는 밥은 우리에게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말한다.

깨진 접시 하나, 낡은 옷가지 하나 버리지 못했던 펀은 모든 것을 버린다. 그녀가 다시 찾은 폐공장은 먼지가 가득하다.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나뒹구는 안전모나 누가 버리고 간 커피잔 정도다. 춥고 을씨년한 공간을 둘러보며 펀의 눈에 비로소 눈물이 고인다. 그녀의 기억은 무너지고 여기 실재하는 공간이 있다. 우편번호도 사라지고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모두가 떠나 다른 곳에서 또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어떤 뿌리와도 같은 공간이. 그렇게 그녀는 낡은 밴을 몰고 다시 길로 떠난다. 그녀의 이번 시동은 가족이 융자해준 돈으로 교체한 엔진으로 경쾌하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를 끌어안고 다만 살아갈 뿐이다. 살아간다, 멈추지 않고. 새로운 새벽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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