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씨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며 모팬이 보낸 사연을 읽다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연애는 개같이 하세요, 여러분"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기적, 누군가에 빠지는 일도 기적이니 달려가 부대끼면서 온몸으로 사랑한다 표현하라는 말이었어요. 물론 실시간 채팅창에는 고양이 파들이 들고일어나 아닌 듯 새침하게 굴다가 모르는 척 한 번 보여주는 애교가 얼마나 애간장을 녹이는지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죠.
이건 영원한 숙제인가 봐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자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 강아지가 더 좋아, 아니면 고양이가 더 좋아?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옆에서 도도하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이 아름다운 개를 보면서요.
물론 나는 별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별은 표현에 인색해요. 별이 꼬리라도 한 번 흔들어 주면 나는 눈물을 쏟을 것처럼 행복합니다.
별은 어머니가 공주처럼 안아 키웠지만 내면에는 말괄량이의 영혼이 있어요.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을 보면 기세 좋게 달려가 저 짧은 다리를 있는 힘껏 들어 올려 콰직 - 내려놓습니다.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를 좋아해요. 그런데 마른 잎에 파묻혀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파괴활동에 열을 올리는 별을 보면 잠깐 무섭기도 합니다. 말괄량이가 아니라 파괴자의 본능이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집에 있는 물건을 부순 적은 없어요. 핀을 제외하고는요.
털이 길다 보니 빗어 넘기고 핀으로 고정해 주는데 빗질을 싫어하는 별에게 세상의 핀은 모두 없애버려야 할 적이 되었을까요. 그런 별이 내게 머리끈을 가져다줄 정도면 저 사진을 찍을 때 내 몰골이 어지간히 흉했나 봐요.
창문이 흰 계절 위에 손가락으로 당신을 쓴다
가장자리부터 얼어붙는 이름을 쓴다
<연애의 시간> 이란 시를 쓴 적이 있어요. 연애를 하는 시간이 아닌, 연애의 시간. 내게 그때 연애의 시간은 잎이 진 계절, 자욱한 눈보라였나 봐요. 녹아버릴 이름을 쓰는 일이었나 봐요.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주워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길을 걷던, 아직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던 시절의 이야기.
연애는 왈왈 - 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야옹 - 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것 앞에선 아낌없이 활짝 웃는 것. 설령 그것이 자본주의의 미소라 할지라도-
그게 연애가 아닐까요.
오늘도 흐리고 마음의 수위는 위험해요. 넘칠 듯 말 듯 찰랑찰랑 -
이럴 땐 좋아하는 것 앞에 가서 얌전히 앉아 웃어요.
그것이 애인 앞이든, 고기 앞이든, 커피 앞이든, 음악 앞이든, 영화 앞이든, 산책을 가든, 시를 읽든, 나를 무시하고 등 돌리고 누워 있는 강아지의 귀에 대고 호수에 갈까? 미끼를 투척하든.
오늘 아낌없이 왈왈 -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