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우리가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언어의 마지막 법칙이란, 단 하나의 용어 안에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언어적인 상징들이 언어가 가리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며, 어쨌든, a는 b의 도움 없이 무언가를 가리킬 능력이 없고 b도 마찬가지로 a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a든 b든 서로 간의 상대적인 차이가 아니면 존재할 가치가 없거나, 혹은 둘 중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즉 그 자체의 어느 한 부분(예를 들어 "뿌리") 뿐만 아니라 이렇듯 무질서하게 얽혀 있는 영원히 부정적인 차이점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간격, 허방, 발이 빠지는 일, 실종되는 것, 사라짐, 증발, 소문.
그런 단어들만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꽃집 앞에 멈췄다.
며칠 전 마른 꽃을 사서 물도 담지 않은 빈 화병에 꽂아두었다. 적당히 쓸쓸하고 좋았다.
오늘 내 눈앞에는 더위에 시들고 있는 연한 꽃잎들이 있었다. 나는 그 부드러운 꽃잎들을 끌어안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정수기에서 찬물을 담아 꽃이 달린 두 줄기를 꽂았다.
그건 사람과 닮았다. 서로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 그렇게 생겼다는 人. 나는 다시 행간, 아감벤이 말한 간격, 유령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마음,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병에 대해 그렇게 많은 인용을 하며 써 내려간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 깊고 서늘한 행간에 대해.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멜랑콜리아로 짓고 싶었지만 이미 유명한 시집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검은 담즙에 매료되어 그것을 꺼내 햇볕에 말려보았다. 푸른 핏방울이 점점이 남았고,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 첫 장에 '푸른 피'라고 적어 보냈다. 나는 우울을 만드는 피를 믿었다. 그것이 뇌의 착각이라거나 호르몬의 착란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우울이 키우는 자그마한 장기가 있어 거기서 조금씩 불순한 피를 만든다고 믿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거나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거나 내겐 늘 이인칭의 대상이 있었고, 신뢰하는 선배는 내게 '너에게 당신은 세계다'라는 말을 남겨주었다. 눈보라 속에서 몸이 식는 줄도 모르고 떨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게 탈속하여 세상을 버린 옛 스승은 네 안에 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 주었다.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 그렇게도 아무렇지 않게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말 따위는 듣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맑은 세상으로 건너가느니 이 세상에서 더 사랑하고 더 눈물 흘리고 더 많은 시를 쓰겠노라고. 스승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여전히 나는 이 속된 세상이 좋다. 망가지고 상했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 시는 혼탁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뿌리를 내리고 피는 꽃이라고 믿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에. 여기가 나의 세계이므로.
아감벤의 이 아름다운 텍스트는 갈망하지만 잡을 수 없는 것, 가려져서 형체가 불분명하지만 분명 매혹적인 것, '부재와 현존 사이의 실체화할 수 없는 부정적 관계', 노래하며 사로잡는 유령을 부른다. 사랑은 살과 피를 가진 당신인가, 만질 수 없지만 손톱 끝까지 통증을 실어 나르는 나의 영혼인가. 사랑은 나를 거절한 여인 앞에서 또 다른 사랑을 찾았노라며 물에 비친 여인의 환영에 반지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허구는 필연적이고 완성된 현실은 허구다. 그 사이 유령은 부재하는 존재로 서성거린다. 가장 아름다운 것, 우리가 열렬히 갈망하는 것은 유령의 옷자락. 만질 수 없는 부재, 하지만 분명 거기 어른거리는 이미지다. 아감벤의 문장은 수많은 텍스트들을 호출하며 열렬히 나부낀다. 그것이 되려 사랑으로 느껴질 만큼.
왜 세상엔 이렇게 많은 사랑 노래가 불리고, 사랑의 시들이 쓰이는지 생각했다. 그건 아무리 쫓아도 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저주고, 치료되지 않는 중독이며, 우울이 파먹는 생기 - 여위고 사라지는 병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지 않으면 무너지기 때문에 사람 인자는 저렇게 생겼지만 저 사이 눈에 띄지 않는 한 점의 간격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그 허방에서 기어올라온다. 무저갱의 괴물들처럼.
구름이 나를 지나가고 나와 꽃 두 줄기는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하지만 곧 뜨거운 열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꽃은 시들 것이다. 밑에서부터 하나씩 시들고 또 피어날 거라고 꽃집 사장님은 말했다. 시들기 때문에 꽃은 덧없고 덧없기 때문에 꽃은 아름답다. 꽃이 저문 자리는 곧 그런 일조차 없었다는 듯 깨끗이 지워져 다른 계절의 흔적으로 뒤덮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 자리에 꽃이 있었고 향기가 가득했다는 것을. 사라진 꽃그늘에 주저앉아 손가락으로 시를 쓴다. 그건 꽃잎의 시, 꽃잎 뒤편에 종종 쓰는 나의 사랑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