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가 아닌 세상에 도전하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살짝 엿본 것만으로도 난 넋이 나가 버렸어.
여기가 어딘지 뭐가 뭔지 짐작조차 안 갔지만
난생처음으로 깨달았지.
이게 내가 원하는 삶임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손에 땀을 쥐고 보던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크루엘라는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겨 코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악녀로 나온다. 미끄러지고 나뒹굴며 달마시안 강아지들이 도망칠 때 TV 앞에서 달아나, 달아나 - 소리치면서도 크루엘라가 좀 멋지다는 생각은 했다. 물론 나쁜 사람이긴 한데,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누어진 특이한 머리카락이며 진한 화장, 지팡이를 짚고 도도하게 서 있는 자세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멋을 부릴 줄 아는 빌런이랄까.
그리고 다시 만난 크루엘라는 뭐랄까, 처음에는 짠하게 느껴졌는데 뒤로 갈수록 통쾌하다고 할까. 저 크루엘라가 나이 들어서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가 된다면 에스텔라를 묻으며 나름대로 남은 생에 대한 정리를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살게 될 저택은 지옥이고, 그녀가 새로 붙인 성은 악마다. 선한 아버지와 미치광이 어머니의 피를 반반씩 물려받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태어나면서부터 흑백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에스텔라를 묻고 난 후 그녀의 머리카락은 선악을 상징하는 흑백이 아니다. 남작부인이 좋아했던 극단, 양심 없는 쾌락, 인생을 즐기려는 승자 - 태어나면서부터의 독재를 보여주는 것일 뿐.
그래서 좋았다. 친모의 품에 잠깐 안겼다가 절벽으로 떠밀린 에스텔라는 죽는다. 복수를 마쳤지만 타고난 여린 심성을 회복하는 동화는 지금과 같은 말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쓰레기차 문이 열리고 온갖 잡동사니 천을 이어붙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크루엘라는 자유와 반항의 화신 같다. 더 이상 악덕은 숨길 이유가 없다. 모든 금기가 풀리고 비밀은 만천하에 까발려진다.
성질 죽이고 남들을 도우며 살라는 천사 엄마 캐서린에게 크루엘라는 말한다. 그럴 수 없다고. 자신 안의 나쁜 피를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하는 그녀는 분명히 선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인이라고도 볼 수 없다. 악동으로 태어났다면 악동처럼 살아도 된다. 진저리를 내면서도 가족 카드에 주저앉고 마는 형제도 있고, 아트를 이해하는 동지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의리를 나눈 친구도. 세상은 순하게 넘어가는 물 같은 사람을 원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그러니 뭐 어떠랴. 지옥의 불꽃을 몸에 두르고 호탕하게 웃으며 달려나가는, 쿨하고 섹시한 여자라도.
화려한 세상에 이끌렸던 아이는 복수의 마녀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엄마와 차를 마시기로 했던 리젠트 분수 앞에서 불에 그을린 얼굴로 크루엘라는 말한다. 사랑하고 있다고. 천사 같은 엄마가 시킨 대로 살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엄마를 계속 사랑한다고. 그때 난 그녀의 몸이 나쁜 피와 맑은 눈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랑이 이 불타는 여자를 어떻게 끌어갈지 후속작이 기대된다.
(+) 영상은 화려했고 강아지들은 너무 귀여웠어요. 특히 윙크는 정말 … 의리파 버디도 사랑스러웠어.
(+) 나는 IPTV 상품으로 집에서 봤는데 자막판과 더빙판 합본 소장용을 결제했어요. 배우들이 움직이며 자기 호흡과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도 좋았지만 성우들이 세심하게 캐릭터를 분석해 목소리 연기를 입힌 것도 좋았답니다. 외화 더빙은 흔치 않으니 기회가 된다면 더빙판도 꼭 경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