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잠시 멈췄을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 품에서 다시 뛰었어 난 깨달았어 당신을 기다렸던 거야 그래서 난 행복해 내 평생 가장 행복해
물의 정령 운디네는 영원한 사랑을 찾아 인간 세상으로 온다. 운디네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그녀와의 사랑은 치명적이다. 인간 남자와 결혼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지만 그의 마음이 변하면 운디네는 연인을 죽이고 물로 돌아가야 한다.
중세 유럽의 설화는 비극적이다. 그 시절의 연애가 지나치게 방탕한 탓인지도 모른다. 기사들이 숙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관습이 아름답다고 칭송되었던 것은 그런 사랑이 드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종한 연인에게 버림받고 가족에게 쫓겨나 수녀원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사생아를 낳으며 마음을 잃고 고급 창부가 되는 여인들이 흔하던 시대.
운디네 설화를 가져와 안데르센은 아름다운 인어공주를 빚었다. 동화의 순진한 표정 뒤에는 잔혹한 생의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사랑에 들떠 새로운 연인을 품에 안은 남자는 그의 발아래에서 진실을 숨기고 사라지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21세기의 운디네는 어떨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을 배신한 남자는 운디네의 손에 죽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쓰지만 이미 다른 여자에 눈을 빼앗긴 남자에게는 마음을 다친 여자의 투정으로 들릴 뿐이다. 절망적인 운명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기적처럼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수조가 깨지고 물이 쏟아진다. 갇혀있는 운명이 흩어져 파닥거린다. 그녀를 좇아온 남자는 크리스토프. 산업 잠수부다. 물속으로 잠겼다가 다시 뭍으로 돌아오는 일이 그의 생업이다.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의 멈춘 심장을 두 번 되돌린다. 함께 잠수를 하다가 물속에서 정신을 잃은 운디네를 뭍으로 데려와 심장 마사지를 하며 크리스토프는 절망적으로 노래한다. 심장 마사지를 배울 때 리듬을 익히기 위해 배웠던 노래의 제목은 'Staying Alive'. 숨이 돌아온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남자의 목을 끌어안는다. 날 다시 살려줄 수 있어?
사랑에 취해 연인의 품에 안겨 걷는 운디네의 옆으로 배신한 옛 남자와 그의 연인이 지나간다. 옛 연인의 시선이 얽힌다. 가벼운 남자는 자신을 죽여버리겠다며 울던 여자가 새로운 남자를 만난 것을 용서할 수 없다. 여자의 직장으로 찾아온 남자는 호텔을 잡았다며 은근하게 유혹한다. 그 가벼움이 잠시나마 흔들렸던 여자를 바로 세운다. 하지만 그녀는 운디네. 영원한 사랑은 그녀의 운명. 옛 남자를 발견하고 잠시 심장이 멎었던 여자의 연인은 그 시간 차가운 물속에서 사고를 당한다.
뇌사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는 남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자를 힐난하고 진실을 말하라고 한다. 운디네는 사랑을 놓치기 싫다. 인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거짓말. 나는 너를 안고 있었어.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네 심장이 잠깐 멈췄어. 그렇게 건강하게 뛰던 너의 심장이.
옛 설화에 따르면 물의 요정 운디네는 영혼이 없어서 인간의 남자와 결혼하면 영혼이 깃든다고 했다. 그러나 21세기의 운디네는 화려하게 빛나는 베를린의 야경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형태만 같다면 내용이 전혀 달라도 안심하는 인간의 세상사를 한탄하는 지성을 가졌다. 옛 남자를 수영장 물속에 밀어 넣어 죽인 운디네는 강으로 돌아간다. 발이, 무릎이, 허벅지가, 크리스토프를 감싸느라 수조의 유리조각에 찔린 상처가 있는 그녀의 배가, 가슴이, 목이, 이윽고 머리가 사라진다. 그 순간 크리스토프가 깨어난다.
깊은 물은 비밀과 보물을 숨기고 있다. 그는 운디네의 비밀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증발한 그녀를 그 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 물에서 그와 그녀는 만난다. 물로 돌아간 운디네는 더 이상 환하게 웃지 않는다. 가만히 크리스토프의 손등을 쓸어보고는 검은 물로 돌아간다. 남자는 그녀를 쫓아간다. 자신의 아이를 품은 아내가 절규하며 부르는 소리에도 잠깐 고개를 들어 쳐다볼 뿐, 그는 그녀의 물로 망설임 없이 돌아가려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심장소리를 되돌려준다.
깊은 물은 비밀과 보물을 숨기고 있다.
되돌아온 남자가 울부짖는 아내를 끌어안고 몸을 떤다. 그의 손에는 물의 여인이 은밀하게 쥐여준 보물이 있다.
크리스토프는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면서. 어쩌면 두세 명 정도의 아이를 더 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영혼의 일부는 영원히 물속에 가라앉아 푸른 표정의 요정과 함께 할 것이다. 운디네는 어쩌면 영원한 사랑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보복이 아닌, 희생이나 포기가 아닌, 심장소리를 되돌려주는 일. Staying Alive. 살아가라고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는 일. 그것이 사랑의 진실이라는 것을 몇백 년의 구전에서 거듭 죽었던 요정은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배신과 보복의 남자에게 눈을 뺏기며 운디네의 심장은 멈추지만 그녀를 감싸 안은 사랑의 온기로 다시 뛰는 것처럼.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에게 잃어버린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힘을 주었고 크리스토프는 물속의 정령에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주었다.
나는 물가로 내려가 그녀를 부른다. 신성한 이름을.
당신은 내게 삶의 온기를 준 사람. 추운 물을 깨뜨리고 따뜻한 햇볕을 쥐여준 사람. 마음을 빼앗기는 목소리를, 웃음소리를, 건강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알려준 사람. 당신은 내게 오로지 기쁨이야. 만약 내가 아프다면 그건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 때문이야. 그러니 아프지 않아. 난 행복해.
… 이 바보야.
나는 그녀를 쓰다듬는다. 푸르고 서늘한 나의 여자, 거울 속의 나를. 우리는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