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순간

by 별이언니
나같은 해녀에게는 숨이 전부에요
숨을 잘 참고 잘 다스려야만 진짜 해녀가 될 수 있는 거거든요
눈앞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숨이 모자라면 그 즉시 돌아서 나와야 해요
혹시 욕심에 물숨 먹으면 큰일나니까
정 아쉽다 싶으면 이렇게,
이렇게 숨비소리를 크게 내뱉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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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란 하나의 말로 정의내릴 수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꽃과 잎이 만날 수 없어 서로를 그리워만 해서 사람들이 상사화라고 불렀다는 진옥의 말에 경훈은 대답한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 아닐까요, 꽃과 잎이 만나는 찰나, 그 짧은 순간이 있어 특별한 것이 아닐까요, 잊을 수 없는 빛나는 순간이 있어서.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치 온 우주가 이 순간을 위해 공모한 것 같은 특별한 스침. 우리는 살면서 그렇게 빛나는 순간을 만난다. 남은 생의 지리멸렬을 끌고 갈 수 있는 연료같은.


해녀는 잠수를 하면서 이생을 버리고 저승으로 잠시 건너간다고 한다. 숨을 도울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물속으로 들어가 뭍의 식구들을 먹여살릴 소라며 전복을 딴다. 저승꽃을 따서 이승의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간절하게 참은 숨을 뱉는 소리, 숨비소리. 처음 숨비소리를 들었을 때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눈물이 고였다.


진옥은 먹고 사는 일이 염려스러워 딸을 바다로 데려가 잃었지만 매일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진다. 경훈은 사랑하는 이를 데려간 바다가 두렵고 밉다. 그런 경훈이기에 숨참기 대장인 진옥임을 알면서도 잠수한 진옥이 바다 밖으로 나오지 않자 이성을 잃고 바다로 뛰어든다. 겨우 경훈을 건져올린 진옥은 숨이 돌아온 경훈을 끌어안고 뜨겁게 운다. 경훈에게 진옥은 사랑하는 이가 참아내지 못한 숨을 가지고 바다에서 돌아온 여신이고 진옥에게 경훈은 끌어내 뭍에 눕히고 애타게 부르자 이윽고 숨을 토한 대답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버린다면 그들의 사랑을 나는 애써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련다. 그냥 진옥과 경훈이 만났다. 그 해 그 바다에서.


진옥을 연기한 고두심씨의 열연이 너무 속상해서 그럴까.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아는, 탄불 같은 표정. 불이 뜨겁게 타오르다가 열기를 그대로 품고 나무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사랑을 끌어안고 끌어안고 끌어안아 조그맣고 단단한 뜨거움을 몸 속 깊이 밀어넣고 산화된.


그 푸스스한 표정이 너무 아파서 화면을 멈추고 한참을 마주했다.


진옥이 바다에서 보내준 숨비소리는 그렇게 애틋한 인사. '살아가면 살아진다' 는 말. 저승까지 가져갈 말을 해줘서 고맙다는 여자의 고백.


사랑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기적이지만, 기적이 만든 성흔을 몸에 새기고 납덩이같은 시간을 깃털처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또 인생이다. 진옥은 사랑을 했지만 사랑을 위해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진옥이기에 아마도 경훈은 '네가 곱다' 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바다는, 저렇게 깊고 푸른 물은, 말이 없고


그 위로 숨비소리만이 길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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