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Petzold, Phoenix

by 별이언니


나지막이 얘기해
내 사랑
사랑은 강렬한 불꽃
어둠 속에 사라져
너무나 빨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신자의 얼굴에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죽은 벗의 머리 위에는 십자가를 그린다. 사랑하는 남편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얼굴에 총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여자가 다시 만난 세상은 배신자와 동지로 거칠게 나누어져 있다. 예전의 생활은 폭격으로 부서진 옛집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산산이 부서진 얼굴은 되찾을 수 없었지만 남편을 다시 만나면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것 같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넬리로, 수용소의 비참함 따위는 모르는 넬리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다시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괴물이 되는 귀향의 광경 따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좋은 넬리로.


아내를 팔아 목숨을 부지하고 다시 죽은 아내를 되살려 아내의 돈을 차지하려는 남편은 얼굴이 바뀐 아내를 자신이 기억하는 옛 아내로 만들려고 한다. 넬리는 넬리이면서 넬리가 아니다. 넬리이기 때문에 필체가 같지만 잘 따라 한 것에 불과하고 넬리의 구두를 신고 넬리가 자주 하던 화장을 해도 잘 따라 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그렇게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팔아넘긴 아내는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밀고한 은신처에서 비명을 지르며 아내가 끌려 나올 때 숲에서 떨면서 지켜보던 눈동자엔 이미 사랑이 없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랑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버린 사랑이기 때문에 그건 영영 암흑에 묻혀야 한다. 망가진 얼굴과 화상 입은 몸으로 지옥에서 돌아와서는 안된다. 수용소 따위는 모르는 듯, 마치 어제 파리에서 쇼핑을 하다가 돌아온 것처럼 기차를 타고 어여쁜 모습으로 플랫폼에 내려야 한다.


그녀에게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은 어느 누구도 수용소의 생활을 묻지 않는다.


죽은 친구들의 이름을 정리하고 박해받은 이들의 영혼에 정당한 비석을 세워줄 유대인의 나라를 꿈꾸는 레네에게 넬리는 기적의 생존자, 죽은 이들의 무덤에서 살아돌아온 상징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벗이다. 그러나 넬리는 사랑에 들뜬 나비처럼 잠든 레네의 침대에 찾아와 나의 조니를 찾았다고 고백한다. 가장 가까운 벗이 가장 역겨운 행동을 한다. 수용소에서 돌아와 배신자들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정작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았던, 운이 좋았던 레네의 마음속에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분노이기도 하면서 죄책감이기도 하다. 그녀는 넬리를 갱생해야 한다. 넬리의 가족은 모두 수용소에서 죽었으니까. 그러나 마치 여름밤 램프 속으로 뛰어드는 작은 벌레처럼 넬리는 사랑에 도취되어 있다. 레네의 머리에 박은 총알은 역겨움일까, 배신감일까, 곧 넬리에게 닥칠 슬픔을 보고 싶지 않은 그녀 나름의 우정일까.


그녀는 조니가 만든 무대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그녀가 햇빛 속으로 사라진 다음, 조니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칠 감정이 무엇일지 나는 모른다. 그는 레네처럼 결벽적이지 않기에 아내의 돈을 챙겨 모든 것을 잊고 백발이 될 때까지 잘 살아갈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르고. 나는 그 불쌍한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 다만 그 역겨운 살롱의 공기를 정화하듯 노래를 내려놓고 나온 여자, 그녀가 원해서 스스로 멈춘 시간 밖으로 드디어 빠져나온 여자가 잘 살아남기를 바랄 뿐. 그녀를 삶에 붙잡아둔 것은 피와 살을 지닌 남편이 아니라 어떤 고통에도 불타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 자신의 사랑이었으므로. 이제 그녀를 붙잡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유롭게, 저 빛나는 공기 속으로 날아오르기를. 삶보다 죽음에 이끌렸던 레네가 아닌, 사랑하고 용서하는 넬리이기에. 그건 죽음의 방식이 아닌, 삶의 방식이기에.


재 속에서 다시 날개를 펴는 불사조처럼.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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