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장난하시는 하느님,
왜 밤의 그림자로만 오시나요?
빛-발자취를 따라 나도 기꺼이 걸어가고 싶은데
그가 나와 함께 있다, 그러나 오직 밤에만 있다
어디 엔드레 <밤의 신> 중
시는 골방의 방백, 광장의 독백. 시는 선동하지 않는다. 시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는다. 시는 완장을 두르게 하지 않는다. 시는 모이게 하지 않는다.
시는 모두를 흩어지게 한다, 안녕 - 인사도 없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뒤돌아
대낮을 걸어 버스를 타고 저녁의 골목에 스며 모든 풍경이 물이 되는 이상한 계절을 지나 그 모든 게 영혼의 풍경이라는 인식도 없이
작은방의 문을 닫고 가만히 앉아 골몰하게 한다. 나에게 스민 시를 끌어안고 골똘히.
지난주의 휴일 수련에선 씨앗을 심는 연습을 했다. 호흡을 하며 감각을 닫고 오로지 컴컴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 거기 오늘 내가 생각할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을 가만히 응시하며 수련을 하면 어느새 몸이 열린다. 열린 몸에 씨앗을 심는다. 봄바람이 날개 달린 포자를 데려오듯 내쉬고 마시는 숨길을 따라 데려온 씨앗을 몸에 심고 다시 몸을 닫는다.
씨앗은 어떤 덩굴로 자랄까. 내가 길을 잃을 숲의 풍경은 무얼까.
어떤 시인은 그저 시를 산다. 삶의 모든 순간이 시로 터져 나온다. 사랑도 열광도 체념도 신앙도. 그 고백에 마음이 열리는 건 우리도 그런 순간을 살거나 살았거나 살 것이기에. 상처의 곯은 자리에서 풍기는 눅진한 냄새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작은방의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감싸 안는다. 모든 비밀은 밤에 온다. 밤은 신의 시간, 시의 시간이므로.
그 밤의 벨벳 같은 상처에서 씨앗을 꺼내 심는다. 간지럽게 몸을 타고 내려가는 포자의 숨결.
봄이 오면 이 격렬한 시는 어떤 색으로 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