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은 웃어준 순간 처음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잊히고 있으니까 꽃만으로도 괜찮은 걸까?
부끄럽게도 나는 젓가락질이 서툴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안기지 않는다
그래도 유난히 꽃이 그려졌었다
조연호 <꽃> 중
최초의 가족을 생각했다. 그러면 구습으로 잊힌 어떤 제의에서 흘러나오는 피나 혀를 자르고 침묵하는 수도사가 생각난다.
그는 밀밭의 오후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탁자 위에 올려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지면 불을 켠다. 늦은 저녁은 소박하고 쓸쓸하다. 그의 투명한 귀신들이 저녁 식탁을 둘러싸고 기도를 하고 있다. 귀울림이 노래로 들릴 만큼 그는 무감하다.
최초의 가족은 죽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던 그들의 저녁 식사는 자손들에게 구전되었다. 그걸 우리는 시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시인이 시를 대하는 자세는 너무도 엄격해서 새벽이면 가시 달린 채찍으로 스스로를 치며 울지도 않고 기도를 한다던 수도원의 수사를 연상시킨다. 이미 수천 번의 번제를 거쳐 다시 부활한 시가 매캐한 불내를 풍기며 걸어 나온다. 시인은 시를 섬기는 것일까.
아니, 아마도 그는 거친 빵을 뜯고 멀건 수프를 마시며 서서히 눈이 멀고 귀가 울리는 저녁 식사를 계속하고 있는 거겠지. 시들은 투명한 옷을 걸치고 그의 뒤에 서 있다. 시는 그를 기도하고 그는 시를 기도한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역사가 깊은 친애.
부끄럽지만 나도 젓가락질이 서툴다. 사는 일이 서툴러 꽃 앞에 오래 앉아있었다. 말을 잊고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