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눈송이를 이해하는 일이 한 사람의 내부를 짐작하는 것이라면. 요동치는 물방울이 너에게 닿을 때, 그건 얼어가는 꽃다발. 귀 기울여도 반쯤은 놓치고 지나가는 슬픈 이야기들 같아. 결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 옛 동화들처럼."
- 이헤미 <물의 비밀들> 중
희미하게 사라지는 언어들에게 손을 뻗는 일도 아름답지만, 단단하게 얽힌 언어의 몸을 어루만지는 일도 아름답다. 빛은 흘러내릴 대상을 만나 비로소 온전하다. 세상의 모든 몸 위에 머물며 빛은 그것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물질성의 세계에 매료된다. 사라지는 몸으로 서툴게 기웃거리며 단단한 과육과 두꺼운 꽃잎의 세계를 유랑한다. 향은 짙고 색은 깊고 세계의 음영은 완전하다. 거기엔 빛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머무는 곳에는 반드시 그늘이 있어 세계는 선명한 궤적으로 이어진다. 비록 나는 발목이 희미한 유령이지만. 이 세계 위로 잔상이 되어 허물어지는 꿈에서 흘러나온 자이지만.
두꺼운 피부와 단단한 뼈 아래 고인 노래는 동경하는 마음을 기억할까. 목이 열리고 세계는 풍성한 소리를 풀어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세계의 완전함. 빛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세계 위를 미끄러지며 그를 더 빛나게 할 수도 있으련만.
시인의 언어만큼 나는 무결하지 못하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시를 만났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