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나 비뇨치 시선집 <세상의 법, 당신의 법>

by 별이언니


"어여쁜 사람들의 시대가 지나간 후에도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시에는 위안이 있음을

전부 끝나는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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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비가 내리고 돌풍이 불었다. 아니, 어쩌면 바람은 없고 고요한 빗방울이 지붕과 길을 적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빗소리는 나의 잠 속으로 들어와 커다란 장화를 신고 사방을 뛰어다녔다. 철벅거리는 소리에 계속 잠에서 깼다. 몽롱하게 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았다. 다시 펼쳐보았다. 관절이 부었고 가는 통증이 스며들었다. 손가락에 이어진 혈관으로 손등으로 손바닥으로 손목으로 팔로 심장으로. 심장으로 빗소리가 걸어오자 나는 비가 내리는 기후대가 되었다.


그건 어쩌면 거칠지만 다정한 시인의 시를 읽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혁명 없는 삶을 누가 삶이라 불렀는가라고 되물으면서도 삶의 관성에 휘어질 수밖에 없는 생활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 할머니와 어머니와 자매들과 딸들의 연대기를 어루만지면서도 거칠고 어쩔 수 없는 손을 가진 남자들을 해치지 않는 사람, 혁명의 시간이 사라지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시간이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한숨을 쉬며 홍차와 과자를 내어줄 것만 같은 사람.


해석은 늘 넘치지만 나의 독서는 늘 제멋대로, 영혼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더듬더듬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라


후아나 비뇨치의 시는 내겐 아침에 만난 새와 같다고, 비가 그친 아침에 창을 여니 옆집 지붕에 앉아 깃을 털며 우는 작은 새와 같다고. 그리고 신발을 신고 현관을 열면 간밤이 비가 내 문 앞에 데려온 흙과 잎사귀, 부러진 가지들, 꽃잎의 흔적들과 같다고.


고요한 비는 돌풍을 품고 있어 비가 내리는 동안 세상의 모든 것들을 쓰다듬고 빛나는 영혼의 일부를 데려온다고.


그건 시를 읽는 일의 기쁨. 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마주 앉아 오후 한나절을 보내며 소리로 만들어지지 않은 어떤 이야기의 파동을 담는 일.


그리고 돌아와 시를 쓴다. 책상보를 사방으로 구김 없이 펼치고 흰 종이 한 장을 놓고.


나의 비를, 나의 돌풍을, 그 비가 지난 후 반짝이며 사라질 어떤 마음의 흔적을.


그 일은 어쩔 수 없이 나에게는 치유이며 기쁨이라서,


내 글이 당신에게 닿는다면 그것 역시 아름답고 따뜻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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