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화 시집, 모두의 산책

by 별이언니


위로하는 시는 침묵이 많아요

그래서 당신을 가둔 우리가 빛나는 거예요


<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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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시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그녀의 시는 너무나 뜨겁다.


살면서 몇 번은 숨 막히는 순간을 지나고도 그중 한 번 정도는 숨이 멎는 순간이 있다. 진공의 상태를 건너온 사람은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시인은 분명 진공의 상태를 지나왔다. 내항적인 시인은 고민했으리라. 저 너머 소란으로 건너가야 하나. 이 진공의 상태에서 그만 숨을 놓아도 되지 않나.


그러나 시인은 고맙게도 사람살이의 소란으로 다시 건너왔다. 그녀가 손바닥으로 쓸어보는 생활의 표면은 거칠고 뿌옇다. 삶의 깊이가 없는 나는 그 위에 꽃잎 한 장, 깃털 하나, 돌멩이, 때로는 얕은 한숨을 얹어두겠지만 그녀의 피는 뜨겁다. 그녀의 사랑은 깊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만신제의 기도처럼 중얼거리며 밤을 넘는다.


너무 더웠던 지난여름의 어느 날, 마스크 속으로 숨을 쉬는 일이 힘이 들어서 그늘에 숨은 적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보아도 보아도 읽을 수 없는 나의 손금, 무딘 칼로 툭 잘라놓은 무의 단면처럼 매끄럽고 표정 없는 무릎. 소극적인 나는 그렇게 자그맣게 구겨진다. 시인처럼 세상의 난장을 하나하나 읽으며 노래를 붙여줄 용기가 없다.


맞아, 어쩌면 그녀는 시로 위로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만 숨차게 읽어낼 뿐. 세심한 기록들은 쌓이고 그녀 우주의 밤은 끝없다. 끝없이 열린 벽들에 새겨진 글자를 더듬는다. 오감이 열리고 풍성한 감각이 흘러들어온다. 우글우글 피어나는.


그건 위로가 아니라 다정한 초대. 문을 열어 세상을 보여주는 일. 그러니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나 풍경 앞으로 가야지. 나의 오감을 열어 세상의 소란을 맞아야지.


비록 나는 여전히 꽃잎 한 장 내려놓는 인사밖에는 할 수 없겠지만. 금방이라도 지워질 말들을 모래 위에 적고 한참을 들여다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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