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의 생을 읽다

by 별이언니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이 막아논

장벽에서

경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랑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


- 나혜석 <인형의 家> 중



어떤 인간은 심장이 장미덩굴의 보석이기도 하다. 우람한 식물의 근육이 지키고 있는 붉은 보석. 그 열이 너무 뜨거워서 잠시도 멈추지 못하고 달려나가야 하는 운명. 방랑자는 길에서 죽는다. 그는 젊어서 자유를 누렸으므로 죽는 순간에도 자유로우리라. 번성한 자손들에 둘러싸여 눈물과 축복 속에 생을 마감하는 일이란 평생을 천국이라는 감옥에서 스스로를 희생한 대가이기 때문에. 분방한 자유로 달구어진 보석은 육체가 스러지는 순간 그가 평생 디디고 머물기 거부했던 땅이 물어간다. 그것도 대가. 대가없는 삶은 없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누린다면 그만큼의 고독도 기꺼이 머리 위에 지고 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 유한한 육체속에 유한한 목숨을 가진, 오로지 소멸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이다.


소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한한 존재가 쥘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과정 뿐이다. 살아간다는 '순간'을 어떻게 꾸려나가느냐, 정의를 내리는 일이 인간의 평생이다. 나혜석은 끝없이 자유롭고 싶었던 사람.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던 사람. 아마도 그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생에 대해 투쟁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모질게 극단으로 자신을 몰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살고 싶었던 젊은 시절에 바라던 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구두 밑창이 닳을 때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면 그녀의 보석에 분노나 좌절이 아닌 다른 색이 어렸을 때 마음이 동했다면 연인을 만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자식을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로 규정짓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유순한 성정의 사람이라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자라는 인간의 아이를 양육하는 일을 감당하는 시기는 인생에서 가장 가능성이 많은 시기, 육체가 가장 활발한 시간, 그리고 영혼의 한낮이다. 태양이 뜨겁고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는 계절. 청춘. 청춘을 자신만의 시간으로 삼을 수 없고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놓아야 하는 일. 그 '기꺼이'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대부분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은 지금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가 가공되지 않은 원석으로 보이는 눈을 가진 이에게 그건 몹시도 괴로운 일이다.


단 하나의 재능만 타고난 사람이라도 괴로웠을텐데 불행하게도 나혜석에게 신은 너무 많은 재능을 주고 엉뚱한 시간에 태어나게 했다. 그렇다면 그건 형벌이다. 자식을 낳고 싶지 않았을 때 자식을 낳게 했으며, 남편을 갖고 싶지 않았을 때 남편을 갖게 했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었으나 모두 - 특히 남성 예술가 동료들이- 가 불륜-상간녀로 비난했다. open-marrige 로 계약한 남편 김우영의 불륜은 나혜석의 불륜에 묻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인정되었고, 자식들조차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였다, 라고 증언했다.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는. 그러니 그녀는 피를 토하듯 입술을 깨물며 외칠 수 밖에,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아낌없는 마음으로 그의 정원에 풀어놓았다면 늙지 않는 몸으로 언제든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아이는 다른 뭍짐승들처럼 빠르게 자라 제 힘으로 세계를 탐색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젊은 몸이 어느 날 수명을 다하면 아름다운 그대로 쓰러져 정원의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신은 에덴을 그렇게 꾸몄으리라.


임신을 하였기에 낙태를 할 수 없어 아이 둘을 낳고 시집살이와 아내됨을 소리쳐 거부하며 이혼하여 방랑하던 여인은 늙어 요양원에 갇힌다. 육체는 느려지고 항상 소용돌이치며 격렬하게 흘러가기만 했던 시간은 멈춘다. 어느덧 재능은 다 불타버리고 몰이해와 몰인정으로 익어갈 시간조차 얻지 못했던, 그래서 허둥지둥 탐색하기 바빴던 예술은 말라 부러져 버렸다. 그렇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이라도 품고 가꿀 여유가 없다면 끌어올릴 물줄기를 못 찾고 메말라버린다. 그녀는 자식들을 찾아 요양원을 나와 길에서 죽는다. 그녀가 자식들을 찾아간 것일까. 아마 그녀는 후회를 찾아갔을 것이다. 평생 온전하게 마주보기를 거부했던, 더 큰 열망을 위해 내려놓아야만 했던, 어느 청색의 자화상을 마주하려고. 그녀가 살아간 시간 내내 밤이면 꿈속에서도 소리지르며 눈물을 흘렸던 젊고 야윈 여자를 찾아가 안아주려 했을지도. 자식들은 그 여자가 지상에 있었다는 증거이므로.


나는 나혜석의 죽음이 그래서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끝까지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았다. 어떤 삶이라도 회한은 있다. 그렇다면 손톱이 부러지고 발등에 멍이 들어도 악착같이, 온몸을 던져, 눈앞에 보이는 무엇을 향해 기어갈 힘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그는 찬란하지 않은가.


그녀가 가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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