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 거란다,
나즈막히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그런 일은 없었어, 네가 봄에 어지러웠던 게지.
작은 얼굴을 덮자 세계가 하얗게 사라지고 묵은 향만 훅 끼쳤다. 화이트아웃이 지나가자 엷은 빛이 결을 이루며 눈으로 들어왔다. 꽃잎에도 혈관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네 살, 나는 장독대에서 추락했다.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장독대에 올라가지 말라는 걱정은 많이 들었지만 묘한 모험심과 오금이 저리는 짜릿함을 끊을 수 없어 자주 장독대에 올랐다. 사실은 골목을 빙 둘러 뛰어가는 것보다 장독대 난간을 잡고 담장을 넘어가는 지름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기침과 발열에 대한 걱정으로 목 아래까지 갑갑하게 단추를 채우는 어머니보다 흙을 묻히며 뒹굴며 놀아도 즐거운 옆집 친구에게 자주 가고 싶었다. 그 날 오후 나는 장독대 위에 있었고, 추락했다.
추락의 감각은 오래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모든 장기가 한꺼번에 들리는 느낌, 몸안이 삽시간에 허공으로 채워지는 느낌, 피가 증발하는 느낌. 추락의 감각은 실감이 사라지는 것과 닮았다. 거죽만 남기고 통째로 지워지는 느낌이랄까. 추락하는 꿈에서 깨어나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래 살을 눌러 뼈와 장기를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몸 구석구석 지문을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사라졌다.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대화를 나누다가도, 깜빡. 꿈이 반복되면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추락은 한꺼번에 여러 세계를 건너는 일이다. 목련나무의 가지에 한 번 걸리고 라일락 나무의 가지에 또 한 번 걸리면서 가속도가 줄어들었다. 한창 봄이라 산딸기와 키낮은 꽃의 군락으로 떨어진 것은 다행이었고, 비료를 넉넉히 뿌려 흙이 촉촉하고 전날 정원을 갈아엎어 커다란 돌덩이가 없었던 것이 또 다행이었다. 나는 다양한 꽃잎들과 함께 허공에서 지하로 순식간에 떨어졌다. 흙이 푹신하게 몸을 받아안는 것을 느꼈고 흙내가 콧속으로 끼치자 멍했다. 눈앞이 하얗게 바래며 햇빛 속으로 보랏빛 라일락 꽃잎들과 때이른 목련꽃잎이 나부끼는 것을 보았다. 목련꽃잎이 얼굴을 덮었다, 향긋한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감기는 사망선고처럼. 꽃잎은 아직 피가 돌고 있었다. 번지고 뭉치며 사라졌다. 흙내가 가시자 꽃향기가 덮쳐왔다. 꽃이라도 몸내는 비렸다.
그때부터였을까. 추락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시작된 것은. 높은 곳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속이 울렁거리고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리는데 각오가 필요했다. 낮은 계단 한 단 위에 올라가 있어도 그 몇 cm의 높이가 염려스러워 발목이 후들거렸다. 바보스럽다고 생각해 티를 내지 않았고 티를 내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마음의 부담은 더 커졌다. 계단 위에 서면 다음 순간 계단 아래 목이 부러져 뒹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발가락에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계단을 다 내려가면 발이 붓는 느낌이 들었다.
캄캄해지는게 싫어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가 허공에 실려 간다는 생각을 하며 몸서리치곤 했다. 비행기를 자주 탔다. 덜덜 떨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구름 위를 걸어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생선가시처럼 마른 사내가 구름을 걷고 있었다. 그 사내는 지금도 유랑중이다. 그는 어린 내가 경계에서 만난 자, 세계의 실금이므로.
나이가 들면서 추락에 대한 공포는 구체에서 추상으로 확대되었다.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무실에서 두 번 세 번 업무를 확인하며 퇴근하지 못하는 밤이 잦아졌다. 관계가 두려워 연애는 시작에서 멈추고, 대책없는 무응답에 친구들은 떠나갔다.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얼굴을 만지면 꼭 유령이 된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아도 낯선 얼굴, 그것이 나였다.
물에 발을 담그면 발목이 일렁이며 사라진다. 희안하게 구부러지다가 끊긴다. 저기 나에게서 떨어져나간 발 두 개가 있다. 왼 발, 오른 발, 걷지 못하고 물렁물렁 덩그러니 발. 한 번 몸의 감각이 통째로 끊겼다가 이어지면서 무언가 단절되었다. 감각은 자주 사라지고, 세계는 자주 뒤바뀌었으며, 나는 다중세계를 한꺼번에 달리다가 뚝- 다시 추락했다. 꽃이 피고 흙이 어는 이 세계로.
죽음에 대해 쓴다고들 하지만 나는 늘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쓰고, 지워지고 사라진다고들 하지만 기어이 뼈 한 조각, 표정 하나는 흘리고야 만다. 추락을 쓰면서 추락을 극복한 건 아니다. 그저 추락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추락하면서 내가 잃어버린 장기, 피톨, 피부의 일부, 지문, 시력, 청력, 무릎의 소용돌이 같은 것. 그것을 구름이 채우면서 나의 실감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꿈을 꾼 것도, 봄빛에 잠깐 어지러웠던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추락했다, 네 살. 잠깐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 잠깐동안 세계는 내게 음험한 속표정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육체는 덥고 비렸다. 축축하고 복잡했다. 가는 뼈와 혈관으로 가득했다.
상처는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흉터가 되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높은 곳이 무섭고, 사람의 구체적인 체온이 두렵다. 나의 세계가 몰락하는 것이 염려스러워 몇 겹의 겨울로 들판을 덮는다. 세계는 온통 추락으로 가득 차 있다. 헛디디고 넘어지고 피흘리는 일로 이루어진다. 세계는 죽음이란 구체다. 그걸 받아들이는 노력이 이번 나의 생이다. 이해하고 인정하기 위해 나는 세계의 벽에 대고 시를 쓴다. 세코날 마흔 알을 흰 걸로 구하지 않기 위해서. 괴물처럼 건강하다면 괴물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엊그제 아흔 여덟의 여자가 죽었다. 그녀는 나와 멀고도 가까운 여자, 나의 가족이 혐오하는 과거를 공유한 여자다. 그녀의 부고를 듣고, 그녀와 나 사이 결코 지울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역사를 생각했다. 매우 사적인 죽음을 떠올렸다. 그녀는 내게 피의 일부를 준 여자, 내 몸 속 지도 어딘가에 지명을 가진 여자. 화이트아웃이 지나가고 하늘을 보자 가는 혈관으로 피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은 반복된다. 죽음은 어떻게든 나와 관계한다. 아무리 내가 지워져도, 아무리 속을 텅 비워도, 실감을 없애버려도. 죽은 여인이여, 나는 당신을 애도한다. 당신의 시간을 인정한다. 당신의 그 마른 손바닥이 내 얼굴을 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기꺼이. 당신은 지금 추락하였다. 그건 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