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 불과 글

by 별이언니


"이 마지막 문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문장을, 주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만큼,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구축하듯 주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와 자기 연단이 창조 활동과의 연관하에서만 가능해진다는 의미로도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무언가를 푸코 역시, 아마도 1968년 클로드 본느포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실천하던 창조 활동, 즉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글을 써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다면서, 그 이유가 글이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해방감 같은 것을 존재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글쓰기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존재한다는 행복감이 글쓰기에 매달려 있을 뿐이죠. 그건 약간 다른 이야기입니다." 행복, 모든 자기 연단이 추구하는 이 탁월한 윤리적 과제는 글쓰기에 '매달려' 있다. 다시 말해, 행복은 오로지 하나의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자기 배려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작품 만들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자기 배려에는 필연적으로 연금술이 필요하다."


<창작 활동으로서의 연금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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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두가 비웃을 수도 있다. 아직도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라고 손가락질하거나, 지나치게 사소한 삶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나'를 어루만지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컴컴하고 축축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을 만나는 일. 고약한 입김을 내뿜는 얼굴을 쓰다듬어 억센 털 안에 숨겨진 붉고 그렁한 눈을 들여다보는 일. 나라는 괴물을 만나는 일. 글을 쓰는 일은 나와 관계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외의 방법을 나는 모른다.


그 괴물의 심연에 비친 삼라만상이 나의 세계. 나는 객관화된 도구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 지평 바깥의 세계에서는 지워진 존재나 다름없다. 어떤 의미로 객관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일은 더 중요하다. 글을 쓰면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놓지 않는 일에서 우리의 모든 선의와 악의가 태어난다.


아감벤에게 글이란 세계란 신전에 타오르는 신비의 불에 닿는 일. 닿으려고 하는 일과 맞닿아있는 '닿지 않으려는 일'. 어슴푸레한 새벽을 걸어 윤곽이 깨어나는 숲을 지나는 마음으로 그의 글을 읽는다. 동의하는 지점도 아직 잘 모르는 부분도 막연하게 한 문장을 계속 되뇌기도 하며.


계속 용감해지려고 이를 악물지만 자주 꺾이는 무릎을 미워하지 말고 엎드려 시를 쓰자고,


생각한다.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인,


글을 쓰는 일만이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일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을, 당신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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