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연락해 요즘 별일이 없는지 묻는다. 그럼 어머니는 먼저 백 세가 된 할머니의 건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근황을 이야기한다. 그다음으로는 소 이야기를 꼭 꺼낸다. 얼마 전에 송아지를 낳았다든지, 송아지 낳을 때가 다가온다든지, 사료가 너무 비싸다든지, 소를 한 마리 사 왔는데 잘 생겼다든지, 송아지가 감기에 걸려서 치료비가 얼마 나왔다든지 ······ 그 이야기를 듣자면 축사의 풍경이 그려진다. 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가 그려진다. 그리고 소에게 여물을 주고 똥을 치우는 아버지가 그려진다. 가끔씩 허리를 펴서 소들을 한 번씩 굽어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냐 물어보면 자기야 늘 별일 없다는 대답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 소똥 무더기에 빠진 적이 있다. 도시에서 산다는, 눈이 커다랗고 바싹 마른 여자아이를 축사에 몰아넣고 문을 잠그는 일은 그저 장난이었을 테다. 어둠 속에서 소들이 일제히 울었다. 음머 - 소들이 뿜어내는 입김과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혼비백산한 아이는 빛이 보이는 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거기엔 거름으로 쓰려고 소똥을 모아놓은 구덩이가 있었다. 대여섯 살 어린아이는 어깨까지 푹 빠질 정도로 깊은 똥구덩이였다. 지금처럼 수도꼭지를 돌리면 더운물이 나오던 시절이 아니었고, 게다가 그곳은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농가였다. 한겨울에 수돗가에서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찬물로 씻고 폐렴에 걸렸다. 나는 울고 엄마도 울었던 소와의 짜릿한 첫 경험.
어른이 되어 인도에 갔다. 바라나시 뒷골목에서 행여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가방을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걷는데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며 주저앉았다. 모두가 영물로 모시는 흰 소가 행차중이었다. 경배하는 인간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자신을 보고도 길을 비키지 않는 이방인에게 가차 없이 꼬리를 휘두른 것이다. 날이 더워서 옷이 얇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소의 꼬리는 힘이 좋아서 얻어맞은 자리는 피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고 싶었던 소와의 부딪힘 두 번째.
워낭소리를 보았다. 극장을 가득 채운 어둠 속에 소의 깊고 슬픈 눈망울이 떠올랐다. 소는 나직하고 길게 울었다. 어렸을 때 비명을 지르는 내 등을 쫓아오던 위협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가끔 붕붕 휘젓는 꼬리는 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저렇게 순한 소에게도 꼬리로 얻어맞으면 꽤나 아플 것 같았다.
소의 등에 업혀서 자란 소년이 쓴 소에 대한 글을 읽었다. 축사에 떠밀려 들어온 여자아이를 보고 당황했을 소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소의 이미지는 대체로 순하고 고요하고 충직하지만 소 곁에서 자란 아이가 알려준 소는 조금은 예민하고 불뚝성도 있고 막무가내의 그리움도 있었다. 내가 당황했던 것보다 소들이 더 당황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자 그 옛날의 소들에게 미안해졌다.
송아지와 함께 숨을 나누며 잠이 들었던 소년은 소를 판 돈으로 학교를 가고 어른이 되었다. 외롭고 힘든 날이면 갈비탕과 꽃등심을 먹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여전히 육회는 먹지 못한다. 왜인지 모르지만. 송아지 이야기를 써서 상을 받은 이력 하나 때문에 백일장이며 문예반에 등 떠밀려 나가다가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정말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시인이 되었다.
그러니 소가 업어 키웠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소년은 이제 어른이고 또한 시인이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소에 업혀 자랐다고 하면 서정적이겠지만 사실 소의 피와 살을 밟고 자란 것이 아니겠느냐고. 소를 생각하면 복잡한 심사이지만 그래도 그의 어린 시절은 소를 빼고는 말할 수 없고, 아직도 늙으신 부모님이 소를 키우시니 여전히 생활과 영혼의 일부가 소의 곁에 머무른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영 소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나도 소똥에도 빠져보고 소꼬리에도 맞아보았으니 내 영혼의 상처 일부는 소에 닿아 있겠지. 그래서 나는 시인이 소튜브를 열면 제일 먼저 구독 버튼을 누르고 영상마다 좋아요도 누를 테다. 언젠가는 꼭 할 것만 같은 소농장에 내 소도 위탁하리라. 이름은 꽃님이? 내 소는 아마 농장에서 가장 게으르고 멍한 소겠지. 주인을 닮았다면.
소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 거예요. 어려서 마신 우유 한 잔으로도 이미 우리는 소에게 몸의 일부를 빚지고 살 테니까요. 그러니 소년과 소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김종삼 시인은 물먹는 소 목덜미에 얹은 할머니의 손을 보고 '함께' '서로'라는 부사를 시에 불러냈지요. 우리는 소와 함께 이 하루를 지나고 서로 적막해요. 발잔등이 부은 저녁을 넘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