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누나 이제 제 생일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잘 삶아진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서
쟁반에 담아서 밖으로 걸어나갔습니다
겨울밤 고기 냄새는 어찌나 황홀하던지요
호랑이 한 마리가 저의 태초를 쫓아오더랍니다
쫓아보내지 못하고 살점을 한 점씩 던져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무덤까지 갔지요"
<무덤> 중
어느 날은 시집을 읽다가 자장면을 시켜서 한 그릇을 허겁지겁 먹고 소화제를 먹은 적도 있었다. 한여름에 등이 시려서 얇은 겉옷을 챙겨 입게 하던 시도 있었다. 시집 한 권을 읽는 일이 기진맥진이라 일주일 걸려 읽고 녹초가 된 적도 있다.
그리고 어떤 시는 몸이 아프다.
밥을 먹으며 열었던 시집을 읽으며 끙끙 앓았다. 손이 저리고 발이 무겁더니 온몸으로 뼈가 갈라지는 통증이 번졌다. 팔다리가 쑤시고 머리가 아팠다.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더니, 영원의 머리라니, 그건 신의 음식이 아닌가. 시인은 태어나고 죽는 사이 인간사를 하나하나 마음 다해 이름을 부르며 걷고 뛰고 기고 질질 끌고 끌려가고 있는데 나는 왜 신의 음식을 떠올리는가. 이건 시인이 바랄 일은 아니지만 나의 오독도 아니다. 뒤축이 닳은 신을 비비며, 살다 보니 살아왔던 온갖 인생을 불러 세우니 시집이 염라청의 재판장과 닮았다. 꽃자주색 시집은 번진 입술과 닮아서 끌려 나온 인생들의 중언부언이 우습고도 서럽다.
위선과 위악과 죄지음과 죄사함과 사랑과 사랑과 사랑과.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구나. 결국은 결이 고운 시로구나. 이 시인은 끝끝내 눈이 고운 사람이겠구나.
영원의 머리는 눈이 퀭하고 마른 입을 쩍 벌린 못 볼 꼴이지만, 지옥에서 떠온 물처럼 붉고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뜨니 간 하나 없이 맑고 달아서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