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기 전에 내가 너들한테 선물 하나 하고 나갈 끼라. 너도 다시는 체력단련 끝나고 <캔디> 같은 노래 부르지 마라. 애꿎은 사람 눈물 흘리게 하지 말란 말이라. 매맞는 거 참는 거는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다. 참고 참고 또 참지 말고 니가 원하는 사람이 돼라. 니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돼라.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꼭 과학자 될 끼다. 그래갖꼬 담임한테 매 안 맞고도 훌륭한 사람 될 수있다 카는 거를 보여줘야 한다. 담임은 우리 때 얼마나 견뎠는지 모르겠지만, 저래 선생질밖에 더 하나? 안 그렇나?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중
어쩌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꿈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무엇, 더 밝은 내일, 저 앞에 어른거리는 희부연 것이 내게 가져다줄 것이 벅찬 무엇이라고 믿으며 그 힘으로 또 한 발을 내딛는다고 착각하는지도. 무거운 다리를 들어 올리는 힘은 그저 우리 안에 남아있는 힘이다. 우리 자신의 것이다. 이 한 발을 애써 내딛는다고 갑자기 신세계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냉소적으로 말한 누구도 있지 않나. 우리는 서서히 죽어갈 뿐이라고.
그래서 종착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서히 죽어가는 오늘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신기루를 향해 허덕거리며 달려가는 일보다 지금 내 뺨을 스치고 흘러가는 오늘의 바람을 느끼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에 거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지키는데 마음을 다해야 한다.
작가는 조금은 쓸쓸하게 하지만 다정하게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아주 조그만 불빛 몇 점으로도 충분하다고. 우리 안에 들어와 빛나는 불빛을 잘 품었다가 온기가 필요할 때 꺼내보는 일. 내 안에 불빛이 있는 줄도 모르고 더 많은 불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로 인생이라는 찰나를 낭비하지 말라고. 먹어도 마셔도 배가 부르고 목이 타는 헛것의 갈증을 진짜라고 믿고 지금의 고통을 견디지 말라고.
망가진 오늘을 사는데 더 나은 내일은 없다. 오늘이 망가졌다면 오늘을 돌보자. 그것이 폐허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자리를 쓸고 무거운 엉덩이를 내려놓으면 뻥 뚫린 천정으로 별을 데리고 밤이 온다. 오늘을 부정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부르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아도 눈물은 흐르니까. 우리에게 두 팔이 있는 것은 누군가를 안아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나를 꼭 끌어안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렇게 문장 몇을 마음에 들였다. 햇빛 아래를 오래 걸었다. 내게 조용히 스민 빛. 너무 고요해서 그만 사무치는 밤에 이 흐린 거울을 꺼내보리라. 빗방울 몇이 나부껴도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