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런 제임스,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by 별이언니

지금 그쪽이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건, 잊는다는 행위 그 자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일은 힘들었다. 피비린내와 지린내가 코를 쑤셨고, 약에 취해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페이지 가득 흘러넘쳤다. 도대체 이 시절 자메이카에는 살인자와 중독자 외의 사람은 살지 않았던 걸까 싶을 정도로.


'가수'를 암살하려는 사건이 해바라기의 꽃심처럼 중심에 있다. 그 주변을 노랗고 뻣뻣한 역사들이 빼곡하게 에워싸고 있다. 가수는 누군가에겐 이 무서운 나라를 떠날 수 있게 해줄 희망이고 누군가에겐 나라를 분열하려는 위험한 상징이다. 한 사람의 노래가 국운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선듯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절의 자메이카라면 가능할 수도.


비속어가 없으면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욕설이 문장과 문장을 잇는다. 아마 원어인 자메이카식 영어, 파투아로 읽었다면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나면서 노래처럼 읽혔을지도 모른다. 정제된 언어를 좋아한다. 차가운 정서를 좋아한다. 명도가 낮은 색을 좋아한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진저리를 치면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책을 읽었다. 이 빌어먹은 등장인물들의 끝은 총에 맞아 죽거나 마약에 중독되어 죽거나 칼에 찔려 죽거나 폭탄에 당하거나 불에 타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어쨌든,


다 죽어버릴 텐데도.


도대체 이런 지옥이 지구에 있어?라고 물으면, 있다. 1971년이다 1976년, 1978년, 1981년이 아니라 지금 2023년에도.


어린아이들에게 마약을 놓고 일회용 킬링 머신으로 쓰거나 평범한 가정의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부녀자를 강간살해하는 일, 거리에서 민간인을 조준 사살하는 일은 여전히 지구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곳에서 과연 정제된, 차가운, 희미한, 그런 빌어먹을 언어가 있겠는가.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작품 밖 현실만큼 구체적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가수의 가슴에 박힌 총알은 심장 바로 옆에 멈췄을지도 모른다. 숨을 내쉬는 대신 들이쉬었다면 바로 심장을 박살 냈을 차가운 총알이야말로 진실이니까.


사실은 얼마든지 조작되고 죽음은 언제든 찾아오고 어떤 악당은 끝까지 살아남을지도 모르지만


총알은 차갑게 심장을 짓누른다. 나 여기에 있어, 브레드랜. 묘비에서 수집한 이름을 수십 개 갈아치워도 결국은 태어나 부모가 처음 불렀던 이름이 따라오듯이.


모든 것이 변해도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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