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지 세상엔.
모르는 사람의 sns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말 것.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유명한 철학자가 남긴 명제는 여전히 교과서에 실려 있다. 사춘기 시절, 알에서 깨어나는 새에 겹쳐서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라고 거창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도 그럴까. 물론 받침을 너무 멀리 적어서 그릇이 되어 버린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무쇠 그릇이. 어지간해서는 깨지지 않아 그 안에 담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죽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녹슬어 충혈된 눈으로 비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것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럼 맞는 것 같다. 이름이 숙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으므로 애자는 사랑을 잃고 스스로 고통의 고치가 되었다. 고통의 껍질이 단단할수록 속은 텅 비어져 갔다. 사랑은 나눌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애자의 사랑은 오로지 금주 씨뿐이었다. 금주 씨가 형태를 잃어서 애자의 사랑은 완성되었다.
소라는 작은 미나리. 열매가 되려다가 미나리가 된 사람. 소라는 열매가 될 수 없었겠지. 애자는 소라를 빚을 양분조차 버렸으니. 미나리는 겨울을 지나 봄에 피는 풀. 피를 맑게 해주고 독을 없애주는 약. 꽃은 피우지 않아도 향긋한 음식. 미나리 한단을 들면 꼭 초록색 부케 같다. 소라는 나나의 언니. 애자가 만든 종이꽃을 가져와 풍경에 다는 사람.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나나는 나나라 나나는 스스로를 나나라고 부른다. 나는, 나는, 나나는, 자연스러우니까. 나 위로 나가 넘어져도, 나가 숨 막히게 겹쳐도 나는 계속해 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엄마가 되겠다고, 무서워도 엄마가 되겠다고, 덧없고 하찮은 인간이기에 사랑스럽다고, 그러니 계속해 볼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나나의 배 안에는 발을 죽 밀어내는, 자근자근자근 고동치는, 불과 몇 개월 만에 평생 쓸 몸을 만들어내는 작은 인간이 있다. 나나는 나 안에 나를 품은 사람. 한밤중에 눈을 뜨면 뼈의 끝에 연결된 조그마한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듣는 사람. 잘 모르겠지만 잘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떠밀리듯 살지 않고 발목을 휘감아 흘러가는 물빛을 마주 보는 사람.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 하나뿐인 부족의 족장이자 부족민이라 지켜야 할 형태는 모두 다르지만 그래서 더 간절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하는. 참으로 하찮고 소중한 무엇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매년 가는 성묘나 매년 하는 만두 빚기처럼. 살아가는 일의 형태를 유지하고 막막한 내일을 향해 계속해 보겠다고 중얼거릴 수 있는 힘은 거기서 나온다. 덧없고 하찮고 사랑스러운 것을 전심전력으로 지켜내는 일.
겨우 그 정도의 마음만 있다면 아직은 계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