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아무도 아닌

by 별이언니

아이가 여덟 살 때였다.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를 끌며 한 정거장을 걸어온 아이의 얼굴엔 눈물이 번져 있었다. 너무 고요하게 울고 있어서 그녀는 아주 가깝게 다가가서야 아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횡단보도로 마중 나온 엄마를 발견한 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달려왔다. 누가 안장을 가져갔는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변명하듯 말하는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배 쪽으로 당겨 안았다. 아이의 머리가 뜨거웠다. 까만 정수리에 달라붙은 은행나무 수꽃을 털어냈다. 안장이 있던 자리엔 세로로 솟은 파이프만 남아 있었다.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가 곤혹스러운 세계 자체로 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개새끼가 가져갔을까. 안장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이 아이에게서 통째로 들어낸 것, 멋대로 떼어내 자취 없어 감춰버린 것. 이제 시작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지...... 이렇게 시작되어서 앞으로도 이 아이는 지독한 일들을 겪게 되겠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거듭 상처를 받아 가며 차츰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중



차츰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될 수는 없어. 가만히 중얼거렸다. 무심한 듯 침착한 듯 하느라 뼈도 내장도 다 텅 비어 버리는 거야, 일평생.

그러다 어느 날 무너지지. 거짓말처럼. 거기 있었기라도 했니? 부스스한 흔적만 바닥에 조금 남아있다가 바람에 쓸려가버릴 만큼. 말끔하게.

그렇게 아무도 아닌 아무조차도 없는 세계에 아직은 무심한 듯 침착한 듯하는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걷는 거야. 죄송합니다,라고 허리를 굽히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그냥 살갗 같은 표정을 하나 쓰고 말이야.

아무도 아닌 너와 내가 그렇게 여기에. ​


그러다 누군가 입을 열면 아주 작고 딱딱한 흉터같이 사라지지도 않는 어느 기억에 대해 말하는 거야. 계단에 쏟아지는 햇볕을 지하 가게에서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처럼. 축 늘어진 아이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평생을 젖어있는 등처럼. 급정거하는 버스에서 연인의 팔 대신 가방을 움켜쥔 손처럼.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하얀 손마디처럼. ​


우리가 무너지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 ​


어쩌면 우리는 평생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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