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블랙박스는 내성적이고 신경이 예민해서 누군가 자신에게 신경 써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플라이데이리코더> 중
김애란 작가의 모든 소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소설에서는 '무언가를 이루는 것'에 대한 서사가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음식에 난 무수한 칼자국이라던가,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도 지나가고 있는 노량진에서의 시간이라던가, 피아노의 뼈는 도가 이루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이고, 밀가루 냄새나는 만두와 출구를 찾지 못하는 마음 같은 것. 살과 뼈와 피와 무기질과 단백질과 수분과 영원히 전하지 못하고 떠돌다가 멍이 되고 섬이 되는 기억이 차곡차곡차곡.
어느 날 아침 지하철에서 아침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전철이 지상구간을 지나자 학생의 얼굴이 새하얗게 바랬다. 오물오물 볼은 움직이고 목이 열리고 닫혔다. 학생은 지금 자라고 있었다. 빵과 우유는 학생의 몸에 들어가 뼈를 이루고 살을 만들 터였다. 희었다가 그늘지고 불쑥 자랐다가 다시 작아지는 저 육체를 잉태하고 낳아서 보듬은 또 다른 몸들을 생각했다. 울고 싶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완전하지는 않다. 그러니 우리는 끝없이 무언가를 채우고 또 잃어버린다. 잃어버린 만큼 채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칼자국이 생기고 반 토막 껌에서는 아직 단물이 나온다. 기다리거나 기억하거나 무엇을 하든 김애란의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긍정적이라 나는 그들의 내일을 지나가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나왔고 그리하여 지나가고 또 지나갈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시간이 광막하게 펼쳐지는 것이 두려워 꽃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루만큼 살다고 하루의 끝에 늙고 다시 아침이 되면 아무 기억도 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그들을 이루는 것은 없다. 그에 비하면 김애란의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평생 누군가의 몸에 칼자국을 남기고 칼을 쥐고 쓰러져 죽는 사람이라니. 소설이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하는가. 가슴이 막막하고 부러웠다. 끝없이 침이 고였다.
구멍이 나고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외투를 입고 살아왔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너무 많아서 산들바람에도 발목이 접혀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럴 때 깊숙이 손을 넣어본다. 나를 만든 칼자국들을 더듬어본다. 외할머니의 곰국, 어머니의 고등어조림, 혼자 간 바닷가 식당에서 사장님이 내어주시던 달걀 프라이, 내가 삼킨 수많은 칼자국들, 의미가 있거나 의미가 없거나.
나는 꽃의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으니.
다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