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따라다니던 고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담 아래 손바닥만 한 햇빛을 잡고 옹크리고 있다
햇빛이 고양이를 뿌리친 적은 없다
고양이 몸속에서 시린 발을 녹이는 햇살도 있다
둘은 잘 어울려 같이 다닌다
단풍나무 아래서 저녁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흑백의 초상이 어른거린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
<서쪽의 이력> 중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을 잊으면 오로지 햇빛을 좇게 된다. 글자가 잘 보이는 곳으로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햇빛이 점점 줄어들고 어두워져 정신을 차리면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있다.
그런 적이 자주다. 어렸을 때는 더더욱. 눈이 나빠졌고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다.
두텁게 발라 자취를 지워주는 밤은 안심이 되지만 두근거리면서도 좇게 되는 것은 언제나 햇빛. 찬란한 것은 오래가지 않고 머무는 동안에도 변덕을 부리며 자주 옮겨 다닌다. 햇빛에 손가락 하나를 걸치고 숨죽여 엎드린 것은 내 안에 녹지 않는 얼음조각이 있어서겠지. 지난겨울 몸 안에 들어온 눈송이가 아직 날고 있어서.
때로 시란 불안하고 두려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햇빛에 걸쳐놓은 손가락 한 마디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