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고 당신은 아는 말들 속에서 등을 보이며 걷는 당신의 뒷모습은 아름답고 엉망진창
<평화와 평화> 중
다정이 지옥이 되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옥이지. 왜 신은 인간을 미지근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왜 인간은 자신의 처음을 기록할 때조차 육체의 결락을 입에 담았을까.
획 하나와 획 하나가 비스듬히 서로 기대고 있어 사람이라고 한다. 혼자로는 설 수 없다고. 하지만 누워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한없이 게으르게 누워 있으면 풀이 자라나 뺨을 스치겠지. 새가 날아와 굳은 등을 밟아주겠지.
서로가 기대고 있어도 그 사이의 공간은 반드시 필요한 거라고 그래야 인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성급한 사람들이 뒤따라오는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울고불고 시끄럽게 떠들 때.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난다.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 조금의 햇빛이 깃들도록. 지옥의 끌탕에선 꽃도 피지 않으니.
무서운 아이의 혀에 자란 꽃을 꺾는다. 아름답구나, 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