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phne du Maurier

by 별이언니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을 생각하면 어두운 성에 갇혀 서서히 미쳐가는 여인이 떠오른다. '레베카'. 죽었지만 죽지 않은 성의 여주인.

히치콕의 뮤즈였으며 서스펜스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작가. 그녀의 작품은 무심코 뒤집은 거울의 뒷면과도 같다. 모든 기괴한 것들은 사이에 깃든다. 불빛과 그늘 사이, 산 아래 마을과 정상의 신전 사이, 구름과 달 사이, 폭풍과 아침 사이. 새들은 파도 위에 머무른다. 시간이 될 때까지. 하지만 시간이 되면 무자비한 날개를 움직여 죽음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인간의 벽과 지붕으로 부딪쳐온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일단 그 순간에 깃들고 나면 소용없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는 공포. 거울이 뒤집히고 세계는 반전된다. 내동댕이쳐진 줄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채 거울 속의 사슴을 바라보며 굳어버린 내가 있을 뿐이다.

작품은 무심하고 냉정하다. 매끄러운 혀로 잘도 말한다. 길을 잃은 자들은 머리를 움켜쥐거나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환상도 꿈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만의 몬테베리아를 세울 수 밖에. 그런데 그건 성찰인가? 깨달음인가? 그저 위안이 아닌가. 나를 방어하기 위해 또다시 세운 거대한 벽이아닌가. 이마를 기대고 기도를 올리면 외간 여자와 정사를 나누고 있는 남편을 목격하더라도 성모의 가호를 받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며 흐뭇한 마음으로 밤을 보낼 수 있듯이.

다시 한 번 이 반전된 세계를 보자. 정말 기괴한가. 비정상적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여자가 비오는 날 공동묘지의 묘비 위에 누워 있는데 사랑을 느끼는 남자가 있다. 그가 정비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한 것도 모르고 푸른 심장 모양의 브로치를 사는 남자가. 반전된 세계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서 빠져나왔기에 그는 목숨을 건졌다. 이런 일만 아니었다면 우리 만남은 로맨스가 되었겠죠? 하며 미소짓는 아름다운 여자 이야기를 호기심으로 듣지 않았다면 알거지가 될뻔한 남자도 있다. 반전된 세계는 사실 다시 거울 위의 세계이고, 좌우가 뒤집혀 있기 때문에 다르게 보일 뿐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어스름에 몸을 두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점층적으로 색이 번져 꼭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거기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건 서로 다른 온도가 만들어낸 공기층의 아름다움이다. 몬테베리아는 환상도 꿈도 없다. 그러니 어디서든 몬테베리아가 존재할 수 있다. 나병도 피할 수 없는 몬테베리아의 삶이 영생을 가진 여사제의 신비로 도배되어버린 순간, 총과 불로 멸해야만 하는 이교도들의 지옥이 되는 거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에 신비가 있는가. 서스펜스가 있는가. 진정한 서스펜스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곳에 있다. 잘못 눌린 시신경으로 인해 세상의 본질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보는 눈만 바꾸면 얼마든지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세계에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은 지독한 리얼리즘이다.

달칵, 거울을 뒤집고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 딱딱하고 무신경한 표면을 쓸어본다. 뒤집어진 앞면은 무엇을 끝없이 비추고 있을까.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구든 기묘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거울은 올이 풀린 세계를 잡아당겨 돌돌돌, 하염없이 끌고 들어간다. 거울이 수집한 세계에 초대되고 싶다면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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