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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Jan 03. 2024

24.1.3

식구끼리 먹는 밥상에 힘들이지 말고 편하게 먹어요,라고 하면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 하고 볼멘소리를 내지르자 궁시렁, 한마디.

나중에 엄마하고의 추억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먹는 것으로 추억을 만들면 눈물이 목을 막아서 평생 맛있는 것은 못 먹고 살 텐데,라는 말은 그냥 삼켰다.

나는 기억이 헐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람 앞에선 경외감을 느끼며 말을 잃는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애착이 없는 사람이라서. 내 안에는 계절감이라던가 어느 시절의 분위기 같은 것들만 애매모호하게 떠다닌다. 그래도 가끔,

어느 순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지금까지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만큼 방금 전까지는 모르는 일인데 떠오르고 나면 색, 질감, 냄새까지 선명하다. 나는 애착이 없어서 시간을 지나온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척하면서 돌에 감아 내 안의 우물 깊숙이 떨어뜨리는가 보다. 퐁당,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고 메마른 우물에.

그러다 맑은 밤이라 별빛이 길어 돌에 닿으면 우물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나 보다. 저게 저기 있었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소한 것 하나조차 흘리지 않을 만큼 욕심꾸러기인지도.

추억이 많은 사람은 기쁨이 많은 걸까, 슬픔이 많은 걸까. 사람의 기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나는 슬픔에 가깝겠지. 그래서 기억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슬프면서 슬프지 않은 것처럼 굴듯이.

오늘의 습기도 그래. 아무 일도 없었지만 갑자기 폐로 스민 습기. 어느 날 떠오를 것이다, 분명. 이 습기를 떠올리고 먹먹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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