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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Jan 18. 2024

24.1.18 대장, 안녕

밤사이 대장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전화가 왔어요. 이 추운 겨울 아침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습니다.

떠돌아다니던 대장을 구조해 임시보호한 세월이 십오 년. 십오 년이면 임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30kg이 넘는 풍산개인 대장을 좁은 아파트에서 보호할 수 없어 아는 분 땅을 빌려 견사 짓고 돌봤으니 임보라고 해야 할 것 같고요.

아니, 그냥 엄마의 아들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떠돌아다니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매번 곡예사처럼 탈출해 동네 산책을 즐기고 돌아오는 통에 애를 먹이기도 했죠. 그 동네엔 대장을 닮은 하얀 강아지들이 봄마다 태어나곤 했어요. 유난히 눈물이 많은 엄마가 마음이 아파 대장의 견사에 들어가 우시면 커다란 몸을 아기처럼 기대며 같이 울던 대장.

대장은 노화로 가진 생명을 다 소진하고 떠났습니다.

떠나기 직전까지 밥도 물도 잘 먹었고 커다란 똥도 많이 쌌어요. 다만 늙어서 눈이 어두워지고 귀도 멀어서 코에만 의지하고 무서워 주춤주춤 걸었어요.

대장은 그 동네 오래 살아서 동네 작은 가게 사장님들이 함께 돌봐주셨어요. 유독 대장을 예뻐하셔서 하루에 두세 시간을 기꺼이 내어 산책시켜주시던 노사장님도 오늘 많이 우시겠네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으며 용감하게 발을 내딛던 대장.

무지개다리 건너면 먼저 보낸 아내와 아들도 만나겠지요.

예쁘게 웃던 대장. 빗질해주면 시원하다고 붕붕 꼬리를 흔들던 대장. 비둘기가 사료를 훔쳐먹어도 귀엽다고 가만히 바라보던 대장. 천천히 가자, 하면 바로 발맞춰서 걷던 대장.

왜 밤에 갔어. 혼자 얼마나 무서웠어.

대장, 행복했니? 이 생이 행복했니?

이젠 눈도 다시 잘 보이고 이도 안 아프고 귀도 잘 들릴 거야. 대장은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니 힘차게 마음껏 달려.

대장, 엄마를 지켜줘서 고마워.

대장의 이름은 만복입니다. 복 많이 받으라고 엄마가 지어준 이름. 대장의 삶이 기쁨과 온기만으로 채워지진 않았겠지만, 소원을 가득 담아 이름을 주었으니 타고난 복보다 더 많이 누렸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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