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징팡

by 별이언니

어쩌면 어디선가 봤던 것만 같은 바이오테러급 디스토피아의 한가운데 웅크리고 앉아 또다른 근미래를 엿본다. 계급간 낙차가 돌이킬 수 없이 크게 벌어져 이제는 도시의 거주구역이 접혀져서 시공간적으로 완전히 차단되는 '접는 도시' 라던가 모든 생명이 절멸해도 문화와 예술은 남는다는 강철족의 단언은 낯설지 않다. 분명 낯선 세계가 펼쳐지는데 낯설지 않은 것은 하오징팡의 세계 속 인간은 여전히 우리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평범한 사람의 논리에 휘말려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죽는 순간까지 욕망했던 것들을 잊지 못해서 다시 생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드는 일. 하오징팡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추레하고 욕망에 흔들리고 나약하고 위태롭다. 그렇다, 딱 우리다.

환경은 달라진다. 우리는 화성에 살 수도 있고, 아름다운 물의 소행성인 곡신에 살 수도 있다. 어디에 살든 혁명을 꿈꾸는 자, 새로운 여행에 들뜨는 자, 사랑을 따르는 자, 욕망에 굴복하는 자, 뉘우치는 자, 배신하는 자, 거품같은 찰나에 들려 평생을 사로잡혀 사는 자의 세계다. 인간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저 먼 신화시대부터 아직 닿지 않은 근미래의 상상까지. 달라지지 않는 인간성이야말로 작가들의 영원한 모티브다.

하오징팡은 "가능성의 세계를 구상하고 그 세계의 끄트머리에 인물을 세워놓는"다고 말한다. 강철족의 매끄럽고 아름다운 신체처럼 평평하고 우아한 상징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거기 우뚝 서 있는 것은, 비루하고 울적한 포즈로 덜덜 떨며 서 있는 것은, 인간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떤 가능성으로 미끄러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제멋대로 숙주를 파괴하며 국경을 넘어 몰아치는 세계의 다음 챕터는 아마 또다른 치료제의 개발일테고, 그렇게 하나하나 절멸의 위기를 넘기며 인간은 세계를 변형한다. 사회의 형태도 변혁한다. 그릇은 달라진다. 하지만 담겨있는 인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여전히 세계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이러스처럼 혁신적인 진화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수정이라고는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인간의 정신이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 보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진정 낯선 세상이 펼쳐지고, 우리는 진실한 미래에 상륙하게 될지도 모른다. 곡신의 아이들이 닿을 행성의 하늘은 매일 다른 색으로 물들겠지. 그렇게 세계의 끝을 열어두는 일, 그것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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