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 누군가와 마주 앉는 일,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는 일, 마주앉아 밥을 떠먹는 일, 그렇게 동굴처럼 텅 빈 귀가 되는 일, 그렇게 동굴처럼 꽉 찬 이야기가 되는 일…… 의 따뜻함을 떠올렸다.
유월의 나뭇잎, 햇빛이 비치는 잎맥을 바라보며 아직 손발도 영글지 못한 생명은 우주가 되고, 한글자씩 겹치는 이름을 더듬으며 죽 거슬러오르면 이제 고요를 건너가는 연희가 된다. 생은 이어진다. 우리가 따뜻한 양수로 가득 찬 자궁이라는 동굴의 내벽에 붙어 이마에 무늬를 옮기는 동안. 서로 다른 얼굴이라도 겹쳐놓으면 두어 개의 선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 벽에 기대 서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철로 위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습관도, 기억이라는 믿지 못할 통증도. 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여도 결코 내성이 생기지 않는 일들이 있다. 이 생을 무사히 견인하기 위해, 우주가 연희로 돌아가고 연희가 우주에게 돌아오기 위해 지켜야 할 고집이 있다. 포기하지 못할 삶의 포즈가 있다.
정문주가, 박에스더가, 나나가 살아온 모든 시간은 복잡하고 쓸쓸했다. 백복희가, 스테파니가 살아온 시간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추연희의, 백복순의 시간 또한 복잡했다. 버려지는 일의 복잡함과 놓아버리는 일의 복잡함이 아무렇게나 공터에 버려진 복희식당의 세간들처럼 신산할 때.
공터의 가운데로 나아가 열려진 서랍을 닫고 내팽개쳐진 이불을 개고 꺼진 조등을 다시 켜는 일. 건전지가 닳아 희미해진 노란 빛을 둥그렇게 복희식당에 비추는 일. 어렵다. 그 폐허를 가로질러, 그 철도를 나란히 걸으며, 우리가 결국 단순한 진심에 닿는 일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 단순한 진심에 끝내 도달하는 자, 맨발로 어디까지고 걸어가는 문주를 이윽고 눈을 뜨고 바라보는 일, 고통의 한 모서리를 접고 우주를 건너온 우주와 또 시간을 보내는 일. 우리의 시간은 이어붙어져 있어 완전히 달라지지도 않고 어두운 일들은 불쑥불쑥 찾아와 가끔씩 멈추겠지만, 백복희의 편지처럼 우리가 다시 만나 뭐든지 먹고 마시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 건너가는 생의 질감은 조금 더 부드럽지 않을까. 너무, 라던가 완벽하게, 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