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순 <자기 개발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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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언니

사는 일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책상 위에도 정석이 있었다. 수학의, 영어의, 국어의. 학교를 졸업하자 또다른 정석들이 몰려왔다. 회사생활의, 인간관계의, 업무처리의.

온갖 공식들이 있었다. 듣고있노라면 허탈한 '또라이 정량의 법칙' 도 있다. 어디를 가든 심기를 거스르는 '또라이'는 항상 있다. 만약 내 주변에 천사같은 사람들로 넘쳐난다면? 그건 당신이 바로 그 공간의 '또라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정석을 준수하고 살아온 덕에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마흔 여섯의 이 부장. 아내와 아이는 '아이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캐나다로 유학을 가 있고, 생활비 일체를 책임지며 기러기 아빠로 바쁘게 사는 이 부장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별로 낙이 없다. 건조하고 심심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큰일이 없어 되려 다행인 다람쥐 쳇바퀴의 삶. 그런 그의 생활을 삐끗하게 만드는 것은 육체 노화에 따른 병이다. 제3형 전립선염, 원일을 몰라 딱히 치료하기도 어려운 불편함. 증상의 완화를 위해 시작한 전립선 마사지가 무미하게 어둑한 방에 촉이 높은 전구를 갈아끼워 전원을 올린 것처럼 빛을 밝힌다. 인생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낀다. 다소 수치스러울 수 있는 행위이므로 의사가 처방한 항우울제가 무색하게 이 부장의 삶은 아네크라를 쓰기 전과 쓴 후로 나뉜다.

'드라이 오르가즘'. 이 부장에게 찾아온 전율을 명칭하는 용어다. 이 용어가 품고 있는 이율배반이 있다. 쾌감과 전율이 건조하다. 온몸의 차크라가 개방되는 것을 느낄만큼의 환희인데 건조하다. 그 환희를 찾아가는 과정이 건조한가? 그 환희 속에 품고 있는 속성이 건조한가? 타자 없이 기구에 의존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삶이 건조한가? 어쩌면 수염이 말했던 이 전대미문의 깨달음은 바람만 스쳐도 갈라져 피가 날만큼 건조한 생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드름에게 맞아 갈비뼈가 골절되어있는 동안 아네크라는 이 부장에게 기쁨 대신 통증만 주었다. 아네크라를 알게 된 이후 이 부장이 생기를 찾는 순간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순간 혹은 전율하는 순간이다. 이 부장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며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과연 아네크라의 기쁨일까? 살아있다는 실감이 아니었을까. 거기 육체가 있다는 감각, 고통 아니면 쾌감. 거기 내가 실존한다는 감각, 쾌감 아니면 고통. 다른 어떤 순간도 세계의 지면에 맞닿은 육체를 감각하기에는 미약하였으므로 그는 양지의 정석을 덮고 진정한 자기 개발의 정석을 펼쳤다. '자기 개발'이란 대상이 되는 '자기'가 있어야만 비로서 시작될 수 있다.

물론 인생은 그럴듯하게 풀린다 싶을 때 다리 사이로 보이는 네 개의 눈동자처럼 경악스러운 반전을 준비하므로 우리는 되찾은 육체의 목구멍을 열어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아네크라는 분명 이 부장과 아내에게 인생의 2막을 선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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