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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서 작가는 나에게 사유란 곧 상상이라고 했다. 문장에서 숲의 폭군을 닮은 힘을 느꼈다. 거침없이 뻗어가는 지맥의 왕. 태양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한 지룡. 거대한 나무는 식물의 숙명을 거부하고 왕의 지위를 얻었지만 꿈(유메)에 사로잡힌다. 꿈은 이야기와는 달리, 마약에 찌들었고 삶에 대한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했으며 내일이 두려워 정이 없는 아비의 낡은 유산인 호스텔에 눌러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그런 꿈에게도 생명력이 있어 폭군은 꿈의 피를 빨아 몸을 불린다. 폭군을 쓰러뜨리면 새로운 출발이 내게 올 것인가. 모든 기억을 팔고 국경시장에 사로잡힌 로나처럼 '내 자리에' 돌아올 뿐이다. 이것을 냉소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 이것은 사유다. 화려하고 풍성한 판타지에 눈을 빼앗겨 미처 깨닫지 못한, '관념 잼' 이다. 유리병으로 변한 나 자신이다.
문학은 인간의 세상을 훑는다. 태양을 향해 순종적으로 팔을 내밀고 대지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운명을 비웃으며 비록 그것이 저주를 끼얹는 죽음으로 귀결될지라도 끝끝내 습하고 어두운 인간의 내면으로 뿌리를 뻗는다. 투명한 대기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이 뿌리식물에게도 꽃은 핀다. 느리고 은근하게 핀다. 거대한 눈동자가 세계의 모든 비밀이 묻힌 지하에서 피어난다.
어딘가에 올라서서 화려하게 주목받는 주인공은 휠체어에 앉고 벌레로부터 재능을 선물받은 인간은 발작을 일으키듯 걸작을 만들어내다가 죽는다. 비참하게 일그러진 육체에 초승달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미소를 걸어두고.
어딘가 아름다움에 닿아있다. 예술가이거나 예술을 건드리거나. 하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김성중의 주인공들은 모두 범재이고, 순결하지 못하다. 완전한 악인도 아니지만 (물론 걸작을 얻기 위해 도끼를 드는 자도 있기는 하나) 핑크빛 죄인이다. 딱 한 방울의 죄로 물든 자. 왜곡하고 부풀리는 자. 이야기를 짓는 자. 이야기꾼은 순결하지 못하다. 그의 눈에 걸린 세계는 휘어지고 비틀린다. 절대 진실이 아닌, 하지만 결코 완전한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는 폭력이 거기서 태어난다.
이 이야기들은 고해성사다. 종이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적어두는 고해. 하지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 고해를 우리는 믿을 수 있는가. 사물이 자리를 뒤바꾸고 자, 만월의 시간이 시작된다. 국경시장의 밤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