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총량의 법칙으로 운용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행운도, 불행도, 사랑도, 고통도, 병도, 슬픔도, 친구도, 원수도. 무엇 하나 치우침 없이 모자람 없이. 평평 지구에 넘치지 않도록.
우주는 총량의 법칙으로 운용된다는데 한 사람의 시간은 어떨까. 인생에 불행만 가득하다고 침울해지면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곧 좋은 일들이 시작될 거야, 날이 밝기 전에 가장 어둡다고들 하잖아. 어렸을 때 마당의 꽃잎이 바람에 쓸려가는 것이 너무 좋아서 배를 잡고 웃었더니 외할머니께서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이 녀석, 그만해라, 호사다마라고 너무 웃으면 나쁜 일이 따라온다.
나이가 들고 사람 사이에서 살다 보니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인생엔 총량의 법칙 따위 없이 각자의 기쁨과 슬픔을 편애하며 살지만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발목이 꺾이지 않는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질투해 누군가 등을 떠밀지 않고 어두운 얼굴에 질색하며 멀어지지 않는다. 손을 담그면 기분이 좋아지는 적당한 온도는 세숫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서로의 온도를 모르면서 다치지 않을 만큼만 웃는다. 다치지 않을 만큼만 딱딱해진다.
어떤 시인은 다정이 무릎 아래를 녹인다고도 했는데, 세모가 다각다각 네모가 뒤뚱뒤뚱 그 뒤를 청설모가 우다다다. 조용한 어투로 시를 쓰다가 문득 눈을 들면 그의 눈에는 무엇이 비칠까. 지겨울 정도로 공평한 우주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그는 조용히 안경을 벗고 머리를 긁고 이내 손을 내밀고 말한다.
‘사랑한다면 벼멸구라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그의 시간엔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