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산문집, 안간힘

by 별이언니

심장이 저절로 뛰지 않는다면, 숨을 애써 들이쉬어야만 한다면 우리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부지불식간에 슬픔이 차가운 손톱으로 가슴을 움켜쥐면 몸을 구부리고. 견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꼬마 시절도 채 넘기지 못하지 않을까. 절망은 저마다 달라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 암흑 속에 굴러떨어지는 경험 하나 없이 살아온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아이가 없는 나로서도 감히 입을 뗄 수 없는 아픔. 모든 죽음은 아프다. 면식이 없는 죽음도. 죽음의 소식이 닿으면 꽤 오랫동안 멍이 든다. 생명에게 죽음이란 그런 것. 그런데 내 아이의 죽음이라니, 그것도 이제 엄마 아빠를 서툴게 부르는 아이의 죽음이라니. 시인은 소리치고 울었다고 썼다. 나는 그 문장도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소리치고 울었다,라고 밖에 쓸 수 없었던 어두운 표정을 떠올렸다. 가끔 우리의 언어와 비언어는 무엇도 담아내지 못한다. 우주인들 담아낼 수 있을까. 출렁이는 고통과 아픔을.


대학 동창의 아이가 죽었다. 오래전에. 첫 생일을 맞지 못한 아이였다. 너무 어려서 그 아이의 죽음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 급히 반차를 내고 뛰어간 장례식장엔 엉망으로 무너진 동창과 젖먹이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입구에서 나도 무너졌다. 흰 국화와 향불에 둘러싸인 아기의 영정사진이라니. 그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슬픔이었다.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장례식장을 나서자 커다란 목련나무가 있었다. 어째서 병원엔 늘 이렇게 커다란 꽃나무들이 있는지. 그 아래 오래 서 있었다. 다시 오래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를 썼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시를. 곧잘 입에 넣곤 했었을 아기의 하얀 주먹을.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는 오래 아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무슨 말도, 어떤 행동도 닿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니, 닿으면 다 날붙이가 되어 상처를 깊게 할 것만 같았다. 친구는 살아남았고 위로를 하지 못했던 나와 서서히 멀어졌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 믿지만 봄에 목련나무를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 감당할 수 없던 슬픔을 곁에서 무력하게 지켜보던 그 시절의 나를,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어리석고 못난 나를.


기억하는 첫 감정은 불안과 슬픔. 내겐 언제나 어두운 감정의 지분이 더 많아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가진 힘의 구 할을 쓰다 보니 내 방의 사방 벽 안에 스스로 유폐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고백은 너무 슬프고 너무 환하다. 시인이 말했듯. 글을 쓰며 스스로 치유하고 비슷한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기적이기에. 그의 떨리는 손엔 위로가 담겨 있다. 울어서 목이 쉰 사람들에게 위로의 단물을 건네며 그는 안간힘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영원히 잊히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슬픔을 데리고. 높고 어진 이름을 어깨 위에 올리고.


차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오래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을 이제서야 읽고 나는 또 부끄럽다. 위로하기 위해, 위로받기 위해 다가가는 법을 모르는 무력하고 비겁한 내가. 한 해가 저물고 다른 날들이 시작된다 한들 해묵은 슬픔이 사라질 리 없겠지. 겨울이 끝나가면 나도 봄으로, 봄을 데리고 어느 감정 곁에 한 걸음 다가가는 용기를 꿈꿔보아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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