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국 무엇을 원했던 걸까. 모두의 만류와 스스로 드는 의심에도 끝까지 회사에 남았던 그는 마지막에 그가 세운 철탑을 모조리 무너뜨린다. 지방으로 한직으로 노골적으로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희망퇴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그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며 무자비하게 주민들을 밀어내던 그가. 그러면서도 무감했고 무감하면서도 다친 강아지를 주워 치료하는 그가. 그는 멈추지 못했으나 지켜보는 일 또한 멈추지 않았다. 평생을 이 회사에서 일해왔기에 그는 회사를 떠날 수 없었다. 위로금도 벗들이 추천한 다른 일자리도 마다했다. 그는 회사에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면서 끝까지 바라고 기다리고 버텼고 버팀의 끝은 파괴였다. 멈추지 못했던 자는 이루었던 모든 것들을 망가뜨리고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왜 일어나는지 모르면서 일어난 지 꽤 됐다. 관성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어제 들었던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메고 비슷한 시간에 떠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졸면서 어제 갔던 곳으로 간다. 하루 종일 앉아서 무언가를 한다. 이것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거나 인간을 구원할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사실도 아니고. 먹고살기 위해 한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도 마이너스를 긋는다. 세상은 놀랄 만큼 무서워지고 더딘 나는 따라갈 수가 없다. 내일도 똑같이 굴러갈 일상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 것은 두려워서도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건 그저 관성, 습관이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매일을 놓으면 무너질까 봐, 닳은 비누처럼 형체도 없이 뭉개진 이목구비를 마주하게 될까 봐. 무의미하게 무감하게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지하철을 타고.
무너뜨릴 수 있을까. 다 무너뜨린 후에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철탑이 우르르 무너질 때 그의 얼굴에 떠올랐을 표정이 궁금했다. 동시에 두려웠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끝까지 가버린 인간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마음이 무너졌다. 그저 평범하게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나와 누군가가 소개해 준 다른 일자리에 들어가 더듬더듬 일을 배우며 생활을 꾸려나가기를 바랐다. 자부심을 가지고 이십 년 넘게 해오던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는데, 해보지도 않은 일을 하며 심지어 남을 다치게 하는데, 어째서!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회사를 나온 스스로를 상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아무 의미도 없이 해왔던 일이기에 그만두는 것도 할 수 없는 거다. 우리에게 일이란 대략 그러하지 않은지. 실체도 없는 두려움을 상상해 내고 거기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철학자들처럼 나의 시간과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단단한 두 발로 디디고 선 땅을 실감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일이라는 건 결국에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그래,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