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어제는 봄>

by 별이언니

햇볕은 옅고 불투명하고 바람은 가볍고 갈피갈피 쌀쌀하다. 봄이 왔다.

어디엔 목련이 핀다고 하고 병이 돌아 남쪽 지방의 꽃축제는 취소되었다 한다. 모든 소식이 옆나라 풍문인 듯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봄이 온 탓.

마음에 수렁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은 봄이 힘들다.

어제 오늘 몸이 아팠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으려고 그랬겠지. 머리부터 가볍게 처박혀 불썽사나운 아랫도리를 허공에 치켜들고 얼굴을 바닥에 가는 꽃을 물끄러미 보게 되느라고.

그 꽃은 죽었는가. 가지에서 떨어졌으므로. 그 꽃은 시들었는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왔으므로.

5월 한복판 조팝꽃이 필 무렵 나무에 몸을 매달 궁리를 한 남자는 줄을 당겨보고 고개를 들어 근심스럽게 나뭇가지를 어림잡았으리라. 숨이 떠나는 순간까지 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안될텐데.

마음에 수렁은 언제 고이는 걸까.

이해받았다고 믿는 사람의 얼굴은 천연덕스럽게 빛난다. 그 가벼움이 멀미난다.

어제는 봄이었나. 윤소은이 있고 윤지욱이 있고 당선작을 소개하는 지면에 실릴 사진을 찍느라 절로 웃음이 나왔던 정수진은 그때 살아있었나.

부모의 외도나 자살이나 지인의 행방불명쯤은 끌어안고 십수 년 살 수도 있다. 건조대에 걸려 볼품없이 말라가는 남편의 속옷을 바라보며 욕지기를 느끼는 밤도 넘어가면 넘어갈 수 있다. 십년 째 등단작 외엔 아무 작품도 발표하지 못하고 미친 듯 모니터의 커서만 바라보다가 눈의 실핏줄이 터지는 날들도 그럭저럭 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죽어 산다. 하지만,

어제가 봄이었으므로 정수진은 이선우에게 달려간다. 햇볕에 온몸을 던지기로 작정한 꽃처럼 사정없이. 봄의 능에 묻어둔 죄를 이선우가 쏜다. 잠들지 못하는 죄를 마취총으로 쏜다.

봄이 지나고 나무는 맥없이 부러진다. 다시, 숨이 돈다.

매거진의 이전글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