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고 말했으니 문을 닫을 수 없는 카페에 닿기 위해 조는 얼마나 오랫동안 걸어온 걸까. 그 길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조를 감싸안은 의자는 누가 만든 걸까. 비에 젖고 따뜻한 커피가 퍼진 몸을 끌어안고 잠에 빠지는 의자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는 얼마나 낯선가. 앉은 키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빈 의자. 우연히 내가 끌어와 앉았고 내가 이 사무실에서 사라지고 나면 또 누군가가 끌어와 앉을 의자. 공장에서 설계도면에 맞춰 기계가 맞춤으로 찍어냈을 의자. 이 의자도 모두가 퇴근한 한밤중이면 사무실에 정물로 고여 하루치의 내 한숨을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한 모금 반 정도의 밀크커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고, 그 때 기적적으로 멈춘 내가 있고, 그렇다면 외할머니를 걱정없는 곳으로 데려갈 관을 만들듯,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의자를 만드는 일도 있다.
우리 집은 푸르지오이고 고모네 집엔 신발장이 없어서 고모는 힘들거라고 말하는 조카의 얼굴에 어린 허기를 읽고 한달 치 일을 기꺼이 접는 애정이 있다. 고모에게서 가난만을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윤택한 마음을 선물하는 어떤 겨울방학이 있다.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 미필적 고의로 이루어져 있다. 내일 우주에서 돌멩이가 날아와 지구가 망가질지라도 일시불로 그어놓은 이십오 만원을 오개월 할부로 돌리기 위해 매일 전화를 거는 일처럼. 그래도 어렵게 연결된 카드사 상담원에게 문득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마음처럼, 우리의 삶은 또 많은 부분 '또다른 의미'의 미필적 고의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가 망가진다면 최대한 너와 가깝게 있고 싶어, 벽 너머와 벽 안이 같다면 벽 너머의 밤을 멍하니 바라보고 싶어, 막차에 치여 저 우주로 날아간 영지처럼, 역으로 달려가는 마음. 가담하지 않으려고 고발하는 마음. 어느 '완전한' 가족 앞에서 고아라고 말하는 마음.
이 모든 마음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서로 멀어지기만 하는 우주 속을 헤매는 돌멩이처럼 외롭고 단단하지만.
돌멩이가 있기에 엄마와 나 사이의 우주는 오늘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 모든 '미필적 고의'로서의 사고가 모여서 피곤한 등과 엉덩이를 가볍게 받아안고,
기다린다. 언젠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계속 기다려왔던, 초라하게 빛나는 순간을. 초라해서 더없이 빛나는 순간을.
#최진영 #겨울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