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K 르 귄

by 별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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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된 우주는 거기 있고 역시 사람들이 산다. 유전자 염기배열이 완벽하게 우리와 일치하는 생물체가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 인간의 외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처럼 생각하는 존재가.

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곳은 창조된 우주. 전혀 다른 문명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자궁으로 회귀한다. 모든 생명은 자궁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자궁이 질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 지구 - 흙공 - 거칠고 원시적이었던 디츄에서 인간은 사랑했고 싸웠고 죽였고 낳았고 다시 사랑했다. 그 무한회귀의 사랑이 도시를 몰락시키고 나라를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피흘리게 했다. 그 지구의 어느 방, 어느 책상 앞에 앉아 노년의 작가는 그녀가 창조한 우주를 부른다. 우아하게 문명화된 예크멘 혹은 헤인, 아이를 낳고 싶을 때에만 서로를 찾는 완전한 침묵 속 개인만이 존재하는 소로(소로에서는 마법을 두려워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힘을 자아내 영향을 끼칠 때-즉, 타인으로 인해 생각과 행동이 흔들릴 때 - 마법사는 개인에게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영원하고 청결한 고독만이 개인을 개인으로 남게 한다.), 아침과 밤 - 남자와 여자가 결합되어야 완전한 결혼인 세도레투를 이루는 키'O, 자궁만이 숭배되는 철저한 모계사회인 카르히데(에서 남자아이는 성장하면 씨내리가 되어 성으로 추방된다. 남자는 영원히 가족이 될 수 없다.)의 별을 순례하고 우리는 '희열'로 온다. 영원히 나아가는 항해만이 축복인 우주선으로. 0세대는 희망이 없는 지구 - 흙공 - 디츄에서 '발견'을 우주로 보낸다. 새로운 지구 - 생명 - 신디츄의 표면에 인류가 착륙하기를 바라면서. 표면적인 희망 아래 그들은 무엇을 숨겨두었을까. 우주 속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인류는 나아가는 도중에 태어난 아이들을 갖는다. 1세대 - 2세대 - 3세대 - 4세대 - 5세대 - 아직 옷을 입지 못한 6세대까지. 우주선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진실한 흙도, 바람도, 새의 울음소리도, 포식동물의 인광도, 나무에서 스며나오는 진액과 벌레도 가상현실로만 경험한다. 처음에 우주선은 '발견'이었으나 항해를 하면서 '희열'이 된다. 우주선은 나아간다. 우주선 바깥은 완전한 암흑, 무, 조용하고 즉각적인 죽음.

나아감 속에서 태어난 생명들이 과연 멈출 수 있을까. 다시 흙에 발을 묻을 수 있을까.

발견을 택한 자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무수히 죽어갔고, 그들의 시체는 한없이 낭비되며 신디츄의 흙에 묻힌다. 우주선에서의 죽음은 완벽한 리사이클링이었다. 세포 한 조각 버려지지 않고 우주선의 생태에 고스란히 헌신했다.

그러나 자연은 많은 것들을 낭비한다. 생명은 낭비되고, 느리고, 실수하고, 엉망진창. 즉각적인 죽음은 없다. 상처는 더디게 낫고 그러다가 운이 나쁘면 죽음으로 이어질 뿐. 죽음은 고통스럽다. 숨을 쉬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 지저분한 고통을 외면하고 다시 '희열'은 항해한다. '희열'을 택한 사람들은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 나아가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희열' 속에서, 항해의 '희열'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 이 더럽고 무지한 흙공 - 디츄에 있으므로 발견을 택한 자들에게 좀 더 동질감을 느낄 뿐. 영적인 항해를 선택한 '희열'의 천사들은 나름의 기쁨에 몸을 맡겼으리라. 아아- 옳다 그르다는 여기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싱이 깨달았듯, 어휘, 이데올로기와 같은 말들은 지나치게 길고 무겁다. 살다 먹다 숨쉬다 춤추다에 비해.

이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있고 관찰자들이 기록하듯 다른 문명에서 흘러들어온 이들은 모두 배척되고 경계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서로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 관찰자들은 계속 존재한다. 기록은 소중한 것이며, 우리는 경악하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것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발을 안고, 이미 죽어버린 아이를 안고 바라보는, 불타버린 성을. 오늘 반란군이 진압했지만 내일 또다른 반란군이 폭격할지도 모르는 폐허 위를.

우리는 '희열'에서 내렸으므로. 겪어야 한다. 엉망진창으로 다치는 삶과 예비할 수 없는 죽음을. 자연의 비합리적인 순환을.

태어나자마자 서로 멀어지고 있는 이 떠돌이 행성에서 우리는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하며 밤이 되면 머리 위 하늘로 무수히 켜지는 수천만년 된 무덤의 조등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시 '희열'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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