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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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단한 말이 있다. 씨앗처럼 심어놓으면 무섭게 퍼져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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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퍼져나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언제나 망설임이 있다. 상처의 흔적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한없이 작아지려고만 하는 마음 속에 온종일 누워 있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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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캄캄해질 때, 어떤 말은 무섭게 번식하리라, 지표를 모두 뒤덮고 포효하리라 맹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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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없이 나는 퍼져나갈테야, 이 말들이 번성하도록- 하고 불끈 쥔 주먹은 얼마나 작고 상처투성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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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죽어가는 소녀여, 물속으로 가라앉는 소녀여, 머리 위로 너풀거리며 찢겨진 속옷이 나부끼는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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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삼엄함 속에서도 얼음처럼 정수리에 꽂히는 말을 세계에 심는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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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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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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