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볼 때마다 울고 싶었다. 매끄럽게 빛나는 은쟁반 같은 세상에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졌다.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 불편했다. 예민한 정신이 매 순간 머릿속에서 종을 울렸다. 어려서부터 받은 엄격한 교육이 없었다면 나는 외조부의 한탄처럼 머리를 자르고 병원으로 걸어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고작 사춘기 때문에. 오, 괴물 같은 사춘기 때문에.
그 시절 나를 사로잡은 것은 현명한 가르침도, 뜨거운 연설도 아니었다. 나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빠져들었고 머리에 총을 쏘거나 레인지에 머리를 박은 시인들의 시를 외웠다.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를 사랑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이아몬드의 광채에 매료되는 것처럼.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내게 싸구려 분냄새 같은 황홀경을 안겨주었다. 뜨지 못했지만 대기실에 장미꽃이 대여섯 다발은 배달되는 여배우의 화장대에 놓인 분냄새. 흑백영화에서 보던 플래퍼들. 가늘고 긴 눈썹과 붉은 입술, 흰 얼굴 위로 번지는 얇고 온기 없는 미소. 나는 지금도 마음이 가라앉으면 조화가 가득 놓인 꽃상가를 걷는다. 지나치게 건강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지나치게 도덕적인 것은 결국 우리를 물속으로 벼랑 끝으로 걸어가게 한다. 휘황한 거짓 광채가, 지루한 탐닉이, 불안하고 어린 맹목이 우리를 위로한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이 그렇다. 그의 미친 재능은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매듭 하나 느껴지지 않는, 부드럽고 불안한 비단 드레스처럼 자꾸만 어루만지게 된다. 그의 소설은 도시의 밤, 지갑 속 마지막 지폐까지 날리는 인공 불빛의 매혹이다. 믿어도 좋다. 피츠제럴드의 소설이야말로 우울의 특효약이다.
그래서 우리는 개츠비를 사랑한다. 사랑, 아니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어떤 가치를 손에 넣고 싶은 갈망은 우리에게 모두 깃들어 있으니. 개츠비는 우리 심장이 빚어낸 불빛이다. 저택을 흘러넘쳤던 술과 불빛 속에서 그는 혼자 고고했다. 흔들림 없이 데이지를 향해, 강 건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가 끝내 속할 수 없었던 우아한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우아한 세계는 차별과 혐오와 잔인함과 비정함과 이기심과 불륜과 배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가치를 떠날 수도 없는 겁쟁이들의 무엇인데도. 눈이 멀었으니 죽을 때까지 따를 수밖에 없는 거다. 인간승리도, 깨달음도, 도덕적인 메시지도 없다. 거기 있는 것은 순수하고 나약한 인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의 연민.
달콤하지만 입술에 끈적하게 남는 술처럼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주기적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벌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를 가엾게 여기도록. 연민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선량한 감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