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인간' 이라는 심연을 어떻게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당혹스러워 한다. 인간,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등불을 들고 들여다보면 그 안엔 심연이 있는가, 혹은 진창이 있는가. 깨끗한,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공허하고 차가운 공간이 있는가.
두 아이와 아내를 죽이고 부모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자살하려다가 살아남은 장클로드 로망. 여기까지만 서술하면 끔찍하기는 해도 미친 살인마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장클로드 로망의 생애가 온통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엔.
세계보건기구의 연구원이자 실력있고 겸허한 의사, 지역사회의 우수한 일원, 가족과 친구의 재산을 관리하고 넉넉하게 불려주던 수완가였던 사람이 사실 아침에 차를 몰고 나가 어딘가에서 시간을 떼우며 망상에 시달리는 '백수' 에 불과할 수 있을까. 지인과 친구들이 아연실색했듯이 독자도 망연자실하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서' 라는 변명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거짓의 성. 18년이나 지속된 굳건한 세계. 장클로드 로망은 자신의 거짓말과 현실을 과연 구분할 수 있었을까. 실연으로 인한 시험거부, 라는 단 한순간의 실수를 바로잡을 용기를 내지 못해 끌어온 시간이 잠든 아내를 밀대로 두들겨패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그의 위태로운 거짓에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안스러워했다.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좀 더 진실한 방어>를 바랐던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서처럼, 장클로드 로망을 사람들은 이제 아픈 사람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클로드 로망은 과연 환자였을까. 그의 죄는 동정의 여지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는 증상' 은 여린 마음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과연 그는 '증상' 이었을까. 처음에는 혼란으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던 작가의 취재는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냉정한 고찰에 다다른다. 딱부러진 결론을 내지는 않지만 장클로드 로망은 <병>이다. 그 병은 '누군가를 상처입히기 싫어서' 혹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가 세계를 부유하면서 만드는 오염이다. 누구나 다소 거짓말을 하고 산다. 상황 혹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인지할 수 있다. 인지가 어렵더라도 병적인 증상으로 발현된 거짓은 설계가 허술해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18년이나 지역공동체를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거짓된 세계는 이미 하나의 증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장클로드 로망은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든 연속된 거짓은 그에게 있어 그대로 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진실로 착각할 만큼 그는 착란을 일으키진 않았다. 거짓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의 영혼은, 그의 감정은 모두 그 거짓된 대상에 투사되었다. 거짓임을 알고 있으나 이미 그 거짓이 되어버린 존재. 그러므로 그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처한 방어기제는 말살이었다. 자살이 아닌, 그가 거짓된 존재로 자신의 세계에 포섭한 사람들, 그가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계속 거짓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증언했던 피붙이들을 말살하는 일이었다. <소중한 사람들> <귀중한 이들> 이라는 허망한 수식어로밖에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장클로드 로망은 <병>이다. 아무 것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형태없는 영혼. 작가는 취재의 말미에 이르러 이미 이 <병>을 작품으로 만들,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이것이 소설이 아닌, 기록문학의 형식으로 세상에 나온 이유는 거기 있다. 넌더리나는 비겁함, 지켜야할 자신조차 없는 치졸함. 장클로드 로망의 껍질을 들추고 또 들추어내자 거기엔 조약돌 하나 만큼의 무게도 없는 '그저 인간' 이 있었던 거다. 어떤 고찰도 필요없는, 쪼그라든 사과같은, 초라하다는 수식도 거창한 허울이 넘실거리고 있었던 거다.
이 기록은 고발도 아니고, 탐구도 아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실존했던 인물 '장클로드 로망'을 던져놓는다. 마리프랑스나 베르나르처럼 선의로 가득찬 인간이 불행히도 작가나 우리는 아니기에, 우리는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훑어본다. 용서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살인자를, 제손으로 죽인 아내와 아이들이 천국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 살인자를, 신앞에 엎드려 매일 기도한다는 살인자를, 위선이라는 말도 붙이기 어려운 인간이라는 괴물을.
세상 어디에 이토록 추악한 인간=괴물 이 있는가.
그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분석될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었다. 나는 쓰여졌어야 할 소설을 포기한 작가의 결벽을 경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