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목에 나도 모르는 창이 있어 가끔 심장에 사는 털벌레가 꾸물꾸물 올라와 몰래 바깥바람을 쐰다는 이야기를 쌀쌀한 계절, 스카프를 두르면 알게 된다. 한 겹 두꺼운 양말이나 가벼운 모자, 얇은 장갑도 그렇지만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는 날, 스카프를 두르면 안온하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을 때의 안도감,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을 때의 평화로움과 닮았다. 외기와 완전히 차단되어 내가 온전하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기대 쇄골 아래 머리를 묻을 때, 가끔은 그 불완전한 보호가 - 되려 불완전하므로 -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기도 한다. 쉽게 풀리고 모양이 망가지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답답해서 풀어야만 하는 스카프, 넓고 얇고 가벼운 천 한 장이 주는 위로가 이런 계절엔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미미한 기쁨을 기억하게 한다. 차가워지는 몸은 쓸쓸하기 때문이다. 기분좋은 서늘함이 가시고 체온을 빼앗길 때, 그럴 리가 없는데도 차갑고 무정한 손이 내 뼈며 혈관, 장기를 움켜쥐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여러 장의 스카프가 있다. 색이 다르고 재질이 다르고 이걸 스카프라고 불러야 하나 목도리라고 불러야 하나 헷갈리는 것들도 있다.
made in italy 라고 씌여 있고 한국의 보세매장에서 구한 아이보리색 스카프는 살짝 추워질 때 메면 좋다. 조직이 얼금얼금 짜여져 있어 가방이나 손톱에 걸리면 금방 올이 나갈 것처럼 약해 실용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 옷에나 어울리고 적당히 촌스러워서 여행을 갈 때 꼭 챙긴다. 제법 길고 넓어서 목을 움츠리면 코까지 무난하게 덮는다. 그렇게 숨을 몰아쉬며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 스카프를 풀면 솔기에서 단내가 풍긴다. 내가 차마 내보내지 못하고 조용히 끌어당겨 하루종일 모아둔 감정이 술처럼 익어 풍기는 단내다. 숨내음.
검은 옷을 입으면 대충 휘휘 두르고 나가는 스카프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랄지, 검은 바탕에 흰 무늬랄지. 얇지만 단숨에 체온을 올려주는, 똘똘한 친구다. 지옥같은 출근길에 묵묵히 하지만 단호하게 등을 떠밀어 끝끝내 사무실에 들어서게 하고, 정말 당신은 그렇게 생각합니까- 라고 인간적인 질문을 하고 싶은 상대를 슬그머니 지워 안전하고 상식적인 사회인처럼 보일 수 있도록 나를 가둬준다. 그래서일까, 며칠 두르면 스카프에서 씁쓸한 냄새가 난다. 내 간이 상하는 동안, 스카프의 간은 녹아내렸나 보다. 세탁소에 맡겼다가 찾아오면 흰 비닐팩 속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다. 그 평화를 깨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다. '최애'는 가장 사랑하는 것 혹은 가장 미안한 일이니까.
목까지 올라오는 겉옷을 입었을 때 세심하게 빈곳을 메꿔주는 보랏빛 스카프는 짧고 얇지만 제 몫은 확실히 한다. 어머니가 사주신 회색 스카프는 몸값이 비싸서 자주 두르지는 않지만 가끔 멋을 내고 싶은 자리에 동행한다. 콧대가 높고 방어적이다. 어머니께 산책가실 때 쓰시라고 선물한 스카프는 손수건보다 조금 큰데, 우리집 강아지도 머릿수건으로 가끔 애용'당한다'.
서랍 가득 스카프가 있다. 긴 것, 얇은 것, 넓은 것, 부드러운 것, 모든 것. 스카프 서랍에 얼굴을 묻으면 한기와 먼지내음이 난다. 길에서 돌아와도 여전히 길 위의 시간을 올속에 품고 묵묵한 일들이 켜켜이 차곡차곡 어둡고 좁은 서랍 속에 있다. 내게 닿아 나를 어쩌면 상처입혔을지도 모를 모든 일들이 그 바래고 낡고 늘어지고 네모반듯한 천에 스며있다. 서랍 가득 스카프를 모을만큼 나는 스카프를 사랑한다. 세상의 어떤 일들로부터 눈을 감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나아갈 때, 스카프는 단단하고 따듯하게 나의 허술한 목을 감싸안는다. 심장의 털벌레가 상처받고 꿈틀거리지 않도록 창문을 밀봉한다. 갇힌다는 일은 안전해진다는 것, 나는 자발적으로 은둔하며 이 얇고 천천히 펄럭이는 보초병을 세운다. 겨우 오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