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모두 '회복사회'의 일원일지 모른다. 우리가 암을 앓았든, 앓지 않았든. 우리가 큰 병을 겪었든, 겪지 않았든. 물론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질병을 제대로 응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질병은 갑자기 온다. 우리는 갑자기 찾아와 일상을 뒤트는 질병을 혼란스럽게 맞는다. 잘 맞이하기는 하는지. 아프다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아픈 사람은 그이의 '정상적인 삶'에서 돌연 단절된다. 예후가 나쁘고 통증이 심한 질병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아픈 사람은 자신의 삶이 멈췄다고 느낀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일을 더이상 해나갈 수 없으며 친구와 가족들이 멀어져 간다. 병원에 누워있으면 아픈 사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회복 의지를 보여야 한다. 치료자들에게 있어 아픈 사람의 몸과 아픈 사람이 지닌 병은 신속히 처리해 없애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 .
저자가 앓았던 병이 '암'이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을까. 황당한 이야기 전개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모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암도 생명이에요' 두고두고 우스개로 회자되는 이 대사가, 그러나 쉽게 웃어넘길만한 말은 아니라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암은 내 몸에 생긴 종양세포다. 암은 내 몸의 일부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전력으로 거부하려고 하고, 심지어 아픈 사람 당사자조차 거부하거나 무찌르려고 하는 병은 사실 오롯이 아픈 사람의 일부다. 병을 앓고 있는 시간을 도려내 인생의 바깥에 버릴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질병이 내 몸에 거주하는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질병이 내 삶의 풍경을 바꾸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 되는 귀한 것들도 있다. 저자는 암을 앓고 나서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새로 보게 되었고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날 밤 창 밖으로 보인 풍경으로부터 몇 줄의 귀한 시를 얻었으며 강 위에 물결치며 내려앉는 햇빛이며 오후의 잘게 부서지는 바람, 부서져 흉이 져버렸지만 어느 부분은 더욱 단단해지기도 한 아내와의 관계를 얻었다. 바라보고 인정했기에 얻을 수 있었다. 외면하고 부정했다면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팠던 시간은 통째로 인생에서 사라졌을테다. 분명 내 몸은 달라져 있는데, 내가 거부하며 도려낸 시간들로 인해 나는 아마 아팠던 - 그래서 회복중인 - 몸과 은밀한 불화를 겪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또 돌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비정상적인 루틴' 에 빠져 있고, '수리되어야 하는' 도구로 인식하는 사회 때문에 돌봄은 커다란 희생을 해야만 한다. 아픈 사람의 몸과 마음을 세계에 연결하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 돌봄이 가치있게 소모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는 아픈 사람 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에게도 제대로 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가는 자이다. 그러나 죽음이란 우리에게 얼마나 불경한 그림자를 던지는가. 태어난 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불길해하며 피한다면 우리는 존재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병든 시간 또한 흘러가는 나의 삶이다. 생명이 이어지는 시간 동안 병을 살기도 하고,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따뜻한 손을 마주잡기도 한다. 그 모든 순간이 더없는 축복이 되려면 우리가 죽어가는 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건 불온한 것도 아니고 사고 같은 것도 아니고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입술에 올리기를 두려워하는 저주 같은 것도 아니다. 바로 다음 순간 죽음은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기자신을 사는 일' 이다. 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해 느리고 지속적인 '회복'을 만들어냈다. 병은 불편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 몸 속 어딘가에 한 점으로 머무른다. 우리는 병과 함께 산다. 우리는 아픈 몸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