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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세상의 봄>

by 별이언니

나는 과연 한 겹의 인간인가, 오롯하게 하나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노래를 빌리지 않더라도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다. 무수히 많은 내가 가끔은 생령처럼 튀어나와 오후의 그늘을 걷는다. 말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나여, 그러나 나는 너를 안다.

살고 싶어서 나를 나눠서 나를 만든다. 시게오키는 결국 살고 싶었던 거다. 어린 아이였으니까 더더욱,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고 차마 받아들일 수도 없는 감정을, 온갖 갈래로 찢겨서 나부끼는 마음을 나름대로 수습하고 싶었던 거다. 그건 아마도 다이묘의 장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 세상을 뒤덮더라도 반드시 봄은 온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검고 푸른 물 속에 가라앉아버린 아이들조차 광의 정월님 행렬에 그림처럼 그려넣어주었으니, 작가는 작가 나름의 진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끌어안고 겨우 일어설 용기를 얻었을 뿐이다. 그것이 봄이라면,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그것이 봄이라면.

권력은 복잡하고 권력이 낳은 그림자는 무시무시하고 그 시절의 생명은 눈물이 날만큼 덧없고 온갖 격식에 사로잡혀 거주지 이동의 자유조차 없는 나리마님과 그 권속들은 현대인인 내가 보기에는 그도 가엾고 그나마 이혼과 재혼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현대가 배경이 아닌지라 소설을 읽으며 남의 나라 옛 풍습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생동감 있는 인물은 고나라촌에서 온 긴이치와 몸의 반쪽이 눈부시게 희고 보드라운 스즈.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아이들은 아름답다. 아이들의 생명력으로 쌓이지 않는 눈의 계절이 끝나고 봄이 오리라. 다키와 시게오키에게 무구한 아이들이 많이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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