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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Jan 23. 2024

따듯하다. 추위에 약한 이의 슬픔.

보드라운 햇살 같은 여행이 끝나고.

새벽 4시. 인천공항 제2터미널 장기주차장. 공항 순환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온몸의 감각들이 깜짝 놀란다. 넓은 허허벌판에는 칼 같은 북서풍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로 세차다.

동남아에서 막 입국한 사람답게 나의 복장은 허술했고, 목에 두른 스카프와 카디건 자락은 하늘로 치솟아 춤을 췄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나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자동차를 향해 달렸다.

영하의 찬바람이 무섭게 온몸을 찔렀다.

 

자동차가 알려주는 새벽 기온은 영하 9도, 집에 들어서며 확인한 거실 온도는 11도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30도의 따끈함 속에 있던 내 몸의 눈이 휘동그래지는 느낌이다. 너무 추웠다.


짧은 태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보통,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 내 집이 좋구나'하는 마음이 조금은 들기 마련이다. 지난 내 수 십 번의 여행의 결말이 늘 그랬다.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로 씩씩하게 내 삶의 터전에 우뚝 서는 사람이 나인데. 그런데, 이번에는 그 느낌이 전혀 없다.

치앙마이에서 9.8까지 올랐던 나의 행복도가 1.8로 곤두박질친다. 날씨 때문이다. 나는 추위에 아주 취약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사는 전원주택은 겨울 추위 앞에서 아주 취약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어제는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기장판 온도를 최대치로 높이고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치앙마이의 빈틈없이 완벽했던 날씨를 추억했다.

그 청량한 아침 공기와 보드라운 바람과 딱 좋은 온도와 습도. 왜 새들의 소리마저도 그리 아름다운지. 하늘빛은 왜 그리도 진하고 맑은 파랑이었을까. 멀리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마저도 소음이 아닌 낭만이었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답답함에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코가 시려서 조금 슬플 지경이었다.


한파가 더 많이 몰려와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16도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사계절이 명확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 겨울이면 센 차가움이 몰아치는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 여행지에서 만난 인간 최적의 날씨를 이곳으로 가져올 수는 없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속상해하거나 미련을 갖는 것은 불행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이다.


내 정원의 나무들은 회색과 갈색으로, 잔디들은 누런빛으로 이 추위를 견디고 있다. 어제 하루 이불속에서 겨울 추위 적응을 했으니, 오늘은 나도 기운을 내어 봐야겠다. 적당하게 따듯한 바람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지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하고.



따듯하다.

따듯한 날씨와 따듯한 사람이 좋다.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따듯한 사람이 되어주러 이제 힘 있게 일어나야지.


다행히, 오늘 날은 아주 차갑지만 햇살이 좋은 날!

남향의 거실창 가득 햇살의 알갱이들이 우수수 들어오고 있다.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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