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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Jan 26. 2024

고요하다. 내 안에 닿는 시간.

도서관의 아침

여린 햇살이 블라인드를 비춘다. 조명은 은은하다. 사람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오가는데, 어차피 그들의 발소리는 바둑판 무늬 카펫에 묻힌다. 책들이 나란하게 높지 않은 서고에 줄을 맞추고 앉아 있다.

나는 이 모든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살그머니 자리잡는다.


서울 사람이 되는 것. 십 대를 관통하며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나의 유일한 꿈이었다. 버스가 네번 다니는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지긋지긋하게 내 고향이 싫었다. 그래서 온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해 공부했다.

그리고 결국, 스무 살을 서울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종로 거리를 걷는데, 모르는 이와 어깨가 툭툭 부딪치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 많은 인파 속에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야호!'하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통쾌했다.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아주 신이 났었지.


그러나 결국, 나의 도시생활은 10년이 한계였다. 서른을 간신히 넘긴 나는 짐을 꾸려 휘적휘적 자연이 충만한 시골을 향했다.

비로소 알았다. 나는 도시가 가진 빛과 소음과 번잡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것을. 도시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에너지를 금세 소멸시킨다는 것을. 시골에서 나는 편안함을 얻었다.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근사한 도서관이 생겼다고 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해외 여행을 가면 나는 늘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을 보면 그 나라의 품격이 보인다. 고품격의 도서관을 만나게 되면 여행자로서 아주 행복해져서, 현지인처럼 오래도록 도서관에 앉아 있는다. 현재까지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발견한 도서관이 최고이다. 강 바로 옆에 지어진 도서관에서, 커다란 창문 가득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책을 읽다 하던 순간이 인생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우리 나라에서 발견한 '가장 멋진' 도서관에 앉아 있다. '가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고요함때문이리라. 낮 시간이 되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많아지고, 나만이 점유할 수 있은 면적이 적어지면, 아마도 ‘가장'은 사라지고 '멋진'만 남을지 모른다.


고요하다.

인공의 빛과 소음이 적을 때,

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적을 때,

나는 비로소 나를 향해 열린다.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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