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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Jan 30. 2024

맑다. 누구나 원하는 기본값.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괴물'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의 배경 음악을 며칠 동안 듣는다. 음악을 내 삶의 배경으로 가득 놓아두고, 영화에 다시 젖어드는 시간이 좋아서이다.

하지만 어제 본 영화 '괴물'에 흐른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듣는 것은, 조금 힘이 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켜 놓았던 음악의 플레이버튼을 중지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교장실 장면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슬픔을 되살려 주어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맑지 않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카모토 류이치, 학교 배경. 이 세 가지의 정보만 가지고 영화관을 찾았다. 몇몇 지인들의 이야기대로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영화의 시점이 바뀔 때마다, 바로 이전 시점에서 내가 미워했던 인물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다. 섣부른 판단은 얼마나 쉬운 것인가.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늘 기억하며 살 것. 그 많은 오해와 오해와 오해들 속에서 누군가는 벼랑 끝에 선다. 크게 조심할 일이다.


그들만의 비밀 장소인 폐기차 안에서 소년은 소년에게 묻는다. '그쪽은 맑습니까?' 다른 소년은 답한다. '맑습니다!' 그리고 둘이 웃는다. 영화가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말은 '맑다'였다.

누구나 맑음을 추구하지만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의 맑은 웃음은 적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한 채로, 서로가 서로에게 본심을 말하지 못한 채로, 모두 슬프다. 평화가 깨어지고 누구도 원하지 않던 갈등이 생기고 모두 다 힘들어진다. 맑지 않다.  

다행히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소년은 끝없이 맑은 날씨, 맑은 하늘, 맑은 초록 속으로, 맑게 웃으며 뛰어나간다. 삶인지 삶 너머의 상황인지와 무관하게 나는 이 영화를 해피앤딩으로 해석하고 싶다.


맑다.

맑은 날씨가 좋다.

맑은 사람이 좋다.

맑은 세상이 좋다.

맑음이 세상의 기본 값이라 믿는다. 사람도 세상도 기본은 맑다.

오해와 거짓말과 숨김의 검은 구름이 그 투명함을 가리지 않기를,

호리 선생님이 아이들과 수업할 때나 지을 수 있었던 그 환한 웃음을 생각하며,

간절히 원해본다.  

*제목 사진: 영화 괴물 공식사이트 https://gaga.ne.jp/kaibutsu-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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