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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Feb 02. 2024

하얗다. 모든 빛을 합쳐 만든 유채색.

겨울산행 눈꽃여행

어느 순간부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주말마다 산에 간다 하면 사람들은 찡그리며 묻는다. "산 오를 때 안 힘들어요?" 지체 없이 대답한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동그란 눈으로 또 묻는다. "근데 왜 가요?" 머뭇거리는 나의 대답. "그러게요..."


처음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네요. 유산소 운동 좀 하세요."라는 의사의 말 때문이었다. 그 후로는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웅장한 아름다움, 성취감, 자연과의 교감, 나 자신과의 대화...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이유를 정답지처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 순간 '그 사람 뭐가 좋아?'라고 스스로 묻고 '몰라.'라고 답하며 혼자 웃게 되는 것처럼.

어쨌든 나는 설명될 수 없는 이유를 안고 산에 오른다.


지난 주말 겨울산을 만나고 왔다. 눈이 내리고 꽤 여러 날이 지나 지상에는 눈의 흔적이 없었다. 평창으로 들어서니 해가 닿지 않는 그늘에는 눈이 조금씩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을 향해 가는데 세상의 색깔이 변해갔다. 그리고 정상에 발을 딛는 순간, 눈을 뜰 수 없는 하이얀 세상이 펼쳐졌다.

완벽하게 하얗다. 황홀하게 하얀 빛깔.


어릴 적 과학 시간에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이 함께 만나면 흰색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 없이 신기해했던 기억이 났다. 다양한 색의 빛깔이 만나면 색이 없는 무채색이 되다니. 무채색이라는 말처럼 흰색은 색이 없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빛(명도)만 있을 뿐.  


하지만, 1,459미터의 발왕산 정상 부근에서 만난 세상은 하얀 '색깔'이었다. 두터운 하얀 담요를 덮어쓴 모양으로 나무들이 휘청대고 있었다. 거센 바람과 함께 날아온 탓에 뾰족뾰족한 모양으로 눈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있기도 했다.  

하얗다. 진하게 하얗다.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완벽한 색깔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작은 이유 하나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산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빛깔의 하얀색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오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색깔이 거기에 존재한다.  

하얀색. 진한 유채색의 하얀색.

 

겨울산에 가 보셔요.

눈꽃들이 눈 뜰 수 없게 하얗습니다. '더 이상'이란 것이 없을 만큼 하얗습니다. 분명 행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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