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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Feb 08. 2024

장하다. 교실 구석진 곳의 너에게 보내는 응원.

옛 제자를 만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014년도에 00고 2학년이었고, 선생님이 제 담임이셨고, 저는 되게 조용했던 00훈이라고 하는데... 같은 반의 00민이란 아이랑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그런데 저희를 기억 못 하실 것 같아서...."


며칠 전 길고 긴 카톡 메시지가 딩동 왔다. 훈이의 자신에 대한 설명은 구구절절 길었다. 하지만, 나는 이름 석 자 만으로도 그 아이들의 고2 때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말도 못 하게 반가웠다.

제자들은 오랜만에 연락하면 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설명이 길다. 하지만, 예상외로 담임선생님들은 제자들을 잘 기억하지. 특히 학교에서 주변인이었던, 그래서 정성을 더 많이 쏟았던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정확히 10년 만에 옛 제자를 만났다. 수업시간이면 늘 엎드려 자던 열여덟 살 아이 둘이 스물여덟의 건장한 청년으로 내 앞에 등장했다. 몸은 좀 더 커졌지만 얼굴은 그때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귀여웠다.

서른 살 안에 1억 모으기가 목표라서 물불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목표에 거의 근접했다는 민. 고2 때 나한테서 요리사라는 길을 안내받았고 그 길을 따라 걸어와 요리사가 되어 백화점에서 근무한다는 훈.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빠져들었다.


담임을 하면서도 수업을 하면서도,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야무지게 자기 관리하는 아이보다는 교실의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간다.

시험이 끝나면 반에서 성적이 제일 낮은 아이를 위한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곤 했다. 일등 한 아이는 스스로 만족스럽고 기쁠 것이니 따로 축하받지 않아도 괜찮지만, 꼴찌 한 아이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욕 없고 우울하거나 거칠거나 성적이 바닥인 아이들. 늘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 '너 이래 가지구 커서 사람 구실이나 하겠어?'라는 말을 무방비 상태에서 듣는 아이들. 나는 말없이 그 아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교실에서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지 못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사연들이 있다. 외롭고 낮고 쓸쓸한 사연들.


훈과 민이 내게 그런 제자였다. 그런데 의젓하게 어른이 되어 있다. 여자 친구와 오랜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며 둘이 나란히 손가락의 커플 반지를 보여준다. 멋진 녀석들.

다만, 민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훈은 요리하다가 생긴 상처로 손가락에 흉터가 진하게 남아 있어 마음 아팠다. 10년을 파란만장하게 살아왔구나. 나라면 못했을 일들을 너희들은 해 냈고 해 내고 있어.


부모로서 교사로서 우리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 자라 있다.

어른들이 적당하게 따뜻한 애정의 빛을 보내준다면, 그 사랑을 양분 삼아 크게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 좋은 어른이 된다.

믿고, 사랑하며, 기다려 주면 된다.


민과 훈!

고맙다.

장하다.

잘 커줘서 너무 좋아!


그리고,

오늘도 교실 구석에서 조용히 엎드려 하루를 보내는 세상의 많은 작은 아이들아,

너희를 응원해!  






*제목의 사진 출처는 can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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