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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Feb 12. 2024

아련하다. 엄마를 위한 떡국 한 그릇.

애도

"어이구, 나 죽으면 제삿밥이나 얻어 먹을라나..."

명절 제사상을 차리는 날이면 엄마는 긴 한숨을 쉬셨다.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고, 기대도 안 한다고, 그래도 조상님 밥상은 끝까지 내 손으로 챙길 거라고. 엄마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막내딸은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시대가 변해서 나중엔 제사 같은 거 싹 다 사라질 거라고 쏘아붙였다. 뭔 제삿밥 걱정을 벌써 하냐고,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핀잔을 주었지. 그때 난 왜 좀 더 따뜻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끝까지 조상님 제사상을 살뜰히 차렸다. 그리고 엄마 말대로 제삿밥은 못 얻어먹으셨다.


엄마 없이 보내는 열일곱 번째 설날이었다. 열여덟 번째인가. 엄마에 대한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까지 십 오 년 훨씬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엄마가 없었으면 결혼한 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아이 셋을 키워낼 수 없었다. 나의 첫 아이를 업어주던 엄마는 잠시 막내 오빠의 아들을 업고 다니셨고, 다시 우리 집에 오셔서 둘째 딸과 막내를 업어 키우셨다.  

마지막 엄마의 모습. 출근하는 나에게 누룽지를 끓여 주시고, 내 큰 딸을 밥 먹여 학교 보내고, 막내를 등에 업고 나가 작은 딸을 유치원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셨다. 그 분주한 아침, 내 두 딸의 머리를 빗겨 예쁘게 묶어주는 것도 엄마의 일이었다.


얼마 전 문지혁 작가의 '중급한국어'라는 소설을 읽다 '애도'라는 단어를 만났다.

"... 애도는 오직 느린 속도로만 가능하죠. '천천히' 보아야 해요. 망각이 제트기라면 애도는 도보 여행입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차라리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애도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 해 한 해가 지나도 엄마를 향한 죄책감과 미안함과 아픔이 줄어들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알코올에 약한 내가 술 한 모금만 들어가면 빨개지는 뺨 위로 주르르 눈물을 떨구어 가족들이 함께 아파한 날도 많았다. 아이 셋은 '엄마 또 할머니 생각한다.'며 달려와 내 얼굴과 손과 등을 쓰다듬었다. 나를 토닥인 작은 손의 아이들이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다. 그만큼 느린 속도가 필요했다.

  

이제는 울지 않고 엄마를 말할 수 있다.

이제 엄마를 생각하면 슬프기보다는 아.련.하.다.


엊그제 설날에 남편과 나는 떡국 네 그릇을 따로 담았다. 1991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 2007년에 돌아가신 내 엄마, 2018년에 돌아가신 남편의 아버지, 2022년에 돌아가신 남편의 엄마 몫이었다. 네 분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에도 제삿밥을 못 얻어먹고 계시다. 네 분의 부모님은 모두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려나. 네 분의 미소, 목소리 모두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련한 내 엄마.

엄마의 막내딸은 이제, 제삿밥 못 얻어먹을 푸념을 하시던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버렸어요. 저와 남편과 엄마가 키운 아이 셋도 모두 잘 지내요. 엄마가 조상님께 정성을 다해주신 덕분이겠죠. 남편과 제가 준비한 떡국 맛있게 드셔요. 엄마도 명절날 제삿밥 얻어드시니 좋으시죠?

늘 미안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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